[기획-죽음의 외주화] 비정규직 벼랑끝으로 내모는 원·하청 구조
[기획-죽음의 외주화] 비정규직 벼랑끝으로 내모는 원·하청 구조
  • 김정기 기자
  • 승인 2019.01.04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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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5사 산재 97%가 하청노동자…외환위기후 비용절감·위험회피 목적으로 확산

"노동자 산재에 대한 원청 책임 강화 필요…정규직화도 속도 내야"
[사진] 연합뉴스 =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근무 중 숨진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가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다. 분향소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근무 중 숨진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가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다. 분향소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서울=파이낸셜리더스】 김정기 기자 =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홀로 밤샘 근무 중 참변을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씨의 추모를 위해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그의 영정 사진이 놓여있다.

사진 속 김 씨는 작업 헬멧과 마스크를 쓴 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그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운동에 참여하며 찍은 인증사진이다.

김 씨의 사망사고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위험으로 내모는 원·하청 구조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경종을 우리 사회에 울렸다.

김 씨는 한국서부발전의 하청 업체 한국발전기술 컨베이어 운전원으로, 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 발전소 9·10호기 컨베이어벨트 관리 업무를 했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업장에서 공정의 일부를 담당한 것으로, 사내하도급에 해당한다.

김 씨의 사망사고는 하청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 관리가 얼마나 소홀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고 당시 2인 1조 근무 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김 씨는 홀로 일해야 했고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었을 때 비상정지 스위치(풀 코드)를 작동시켜줄 동료도 없었다. 인건비 절감을 추구한 업체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소홀히 한 것이다.

입사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김 씨는 위험한 밤샘 근무를 혼자 했다. 태안 발전소에서는 노동자 안전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위험 업무를 하는 하청 노동자는 대부분 김 씨와 비슷한 처지다.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죽음의 외주화'라는 말까지 나왔다.

서부발전을 포함한 발전 공기업도 산재가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2∼2016년 5년 동안 발전 5개 기업에서 발생한 산재는 모두 346건이고 이 중 하청 노동자가 당한 것은 337건으로 전체의 97.4%을 차지했다.

조선업과 건설업은 위험의 외주화가 가장 심한 업종으로 꼽힌다. 조선업 대형 사고를 조사한 '조선업 중대 산업재해 국민 참여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작년 9월까지 약 10년 동안 조선업의 산재 사망자는 모두 324명이고 이 중 하청 노동자가 257명(79.3%)에 달했다.

작년 5월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크레인 충돌사고로 숨진 노동자 6명도 모두 하청 업체 소속이었다. 하청 노동자가 산재 위험에 노출되는 원인은 원·하청 구조 자체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청이 산재 책임을 피하기 위해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청 업체는 설비투자 능력이 부족한 데다 원청으로부터 업무 기간 단축 압력을 받아 기본적으로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기 어렵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하청 노동자의 잦은 이직으로 근속 기간이 짧아 업무 적응도가 떨어지는 점도 산재 위험을 높인다.

하청 업체는 노무관리 수준도 낮아 안전보건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이 많다. 하청 업체가 업무의 일부를 다시 외주화하기도 한다. 이렇게 중층적인 원·하청 구조가 만들어지면 원·하청의 소통이 어려워져 안전보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하청 노동자는 업무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려워 원청과 정보공유를 포함한 소통이 중요하다.

기업이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은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인력 운용의 유연성이 필요한 업무의 경우 정규직을 뽑아 일을 시키는 것보다는 하청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 맡기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하청 업체의 수주 경쟁을 유도해 단가를 낮출 수도 있다.

위험 업무의 경우 노동자 산재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 외주화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위험 업무를 둘러싼 정규직 노조와의 갈등을 피할 수 있다는 것도 사업주에게는 장점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하청 노동자 산재에 대한 원청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너무 가볍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내 주요 산재 사망사고에서 원청 임직원은 수백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거나 징역형을 선고받더라도 집행유예인 경우가 많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여야가 연내 처리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쟁점에 대한 의견차가 커 격론이 계속되고 있다. 원·하청 관계가 한국에 특수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확산하면서 고용 유연화를 위한 기업의 '아웃소싱'이 확산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이후 빠르게 퍼져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서부발전과 같은 공기업도 공공성보다는 경제성을 우선시하면서 원·하청 구조를 앞다퉈 도입했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제2의 김용균 씨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원·하청 구조를 활용한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게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하청 구조는 경기 변동에 따른 고용 유연화가 필수적인 업무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비용 절감과 책임 회피를 위한 것은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5월 취임 직후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여러 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하청 노동자를 포함한 파견·용역의 경우 협력업체와 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다. 노동계는 자회사를 활용한 정규직 전환 방식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청 업체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동계 관계자는 "과잉 경쟁으로 낮은 단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하청 업체의 적정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안전보건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힘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 반발에 2년 잠잔 '위험 떠넘기기 방지법'
입법예고후 꾸준히 반대 의견…연내 처리 합의에도 여전히 난항
전문가 "개정 목적은 제재 아닌 독려…원청이 안전관리 책임 100% 져야"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 사고 이후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7개 법안이 패키지로 발의됐다. 약 2년이 흐른 지금, 7개 법안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아직 한 건도 없다. 그 사이 재계는 꾸준히 해당 법안의 국회 통과를 반대해왔다.

재계의 조직적 활동으로 국회에서 2년간 잠자고 있던 외주화 방지법은 결국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다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여야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여전히 쟁점을 놓고 격론이 이어지고 있다.'

◇ 2년간 표류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재계 반발 영향

23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2016년 5월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19세 노동자가 숨진 사건 이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7개 법안을 패키지로 국회에 제출했다.

유해성과 위험성이 높은 제조, 취급, 안전관리 업무를 하도급 줌으로써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법안에 이 같은 별칭이 붙었다.

패키지 안은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2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철도안전법' 개정안으로 구성됐다.

국민의 당(당시 명칭)과 정의당도 사업주의 안건보건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을 각각 발의하며 사고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지난 2월 9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 관련 논의를 한데 모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작업 현장에서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원청업체 사업주도 하도급업체 사업주와 마찬가지로 1년 이상∼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는다.

도금과 수은·납·카드뮴·황화 니켈·염화비닐·크롬산 아연·비소 등 유해·위험성이 높은 12개 물질의 제조·사용작업은 도급이 전면 금지된다. 유해·위험 화학물질의 제조 설비를 개조·해체하려면 고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도급이 가능하고 위반 시 10억 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자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3월 "경미한 안전·보건조치 위반에 따른 사망사고까지 하한의 징역형을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을 고용부에 전달했다.

그다음 달에는 '산업안전보건정책 개선 토론회'를 열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내용이 모호하고 규제 규정이 과도해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논란 속에 개정안은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에 대한 처벌 하한선이 빠지고 위험작업 예외조항이 신설됐다.

법이 국회로 넘어오자 경총은 지난달 26일 '기업환경 개선을 위한 바람직한 상법 개정 방안 모색'을 주제로 한 간담회를 열어 산업안전보건법, 공정거래법 등의 법안 개정이 한꺼번에 추진돼 기업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9일에는 산업안전보건법 등 8개 법안에 대한 종합 의견서를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에 제출했다. 경총은 "중대 재해 발생 시 이뤄지는 작업중지 명령을 최소 필요범위로 한정하고, 도급인 책임 범위를 생산 관련 도급업무 및 산재 발생 위험장소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산하 연구기관을 활용해 재계의 입장을 뒷받침할 연구나 설문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입안 과정에 참여한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외주를 늘린 가장 큰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이라며 "하지만 외주는 전문가에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 맡기는 게 원칙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국회 10개월 만에 개정 합의…'사각지대' 남아

여야는 지난 21일 임시국회 회기 내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입법예고를 한 지 약 10개월 만이다. 뒤늦게나마 개정안 처리에 희망이 나타난 것은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 협력업체 직원 김용균 씨의 사망이 계기가 됐다.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3시 20분께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운송설비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구의역 사고 발생 2년 만에 하청업체 직원의 사망사고가 또다시 발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뒤늦게 정치권도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1일 공청회를 열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규정한 보호 대상 확대와 작업중지권 확대, 유해위험작업의 도급 제한과 원청업체의 책임 강화 등을 논의했다. 깉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김씨의 빈소를 조문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차질없이 통과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정안의 연내 처리 합의에도 각 상임위 논의 단계에서부터 여야 간 첨예한 대립으로 난항을 겪으며 연내 처리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여기에 처리를 앞두고 있는 개정안은 재계의 반발 의견이 반영돼 '누더기'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김용균씨가 맡던 직무에 대해선 여전히 하도급이 가능하다는 맹점도 안고 있다.

개정안은 납이나 수은 등 유해한 중금속을 사용하는 업무의 경우에만 하도급을 금지했는데 이 경우 김씨와 같은 수리·정비 근로자는 여전히 하도급이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개정안에서 규정한 업무뿐만 아니라 사망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한 업무는 하도급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일단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기업의 안전 관리가) 다소 나아질 것"이라면서도 "원칙적으로 책임은 원청이 100% 져야 하고, 혹시 외주를 준다고 해도 최종 책임은 원청이 지는 구조가 확립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공기업의 안전경영에 대한 평가 비중이 현재는 전체의 3%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를 30% 이상으로 확대해 기업의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은 의무를 위반한 사람에 대한 제재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산업안전 관련 예방 조치를 충실히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라며 "예방체계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사진] 연합뉴스 = 태안화력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와 제주 현장실습고등학생 고 이민호 군 유가족 등이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태안화력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와 제주 현장실습고등학생 고 이민호 군 유가족 등이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영국선 안전관리 소홀에 '기업살인법'까지 적용
선진국 "안전기준 준수가 비용 줄이는 길" 인식…사전 엄격점검-사후 강력처벌 '이중장치'
미국, 노동당국에 강력한 단속 권한…일본 '안전 우량기업' 공표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엄격한 사전 점검과 강력한 사후 처벌이라는 정책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런 '이중장치'를 통해 사고를 방지해 사회적 손실을 줄이고 기업에는 자발적으로 규정을 지키는 분위기를 유도한다. 안전을 단순히 '비용'이나 '불필요한 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한국에서 2016년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 쏟아졌다가 재계의 반대 등으로 2년간 개정안이 표류했던 것처럼 이들 선진국에서도 대규모 산업재해와 사망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관리 법규를 제정했다가 기업의 반발을 샀던 전례가 있다.

◇ 美, 막강 권한의 OSHA…겹겹의 제재금으로 안전사고 사전예방 

미국은 산업현장의 안전·위생에 관해 전통적으로 주(州) 단위에서 법률로 규제해 왔다. 연방 차원은 1936년 월시-힐리법을 계기로 작업장 안전과 근로시간 등을 감독할 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산업 안전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다가 1950년대 들어 큰 산업재해가 발생하면서 연방 규정에 따른 통일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에서는 1970년 산업 안전과 위생에 관한 포괄적 연방 법률인 '직업안정위생법'이 제정되면서 관리·감독이 체계화됐다.

이 법은 적용 대상 사용자를 '근로자를 사용해 일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업에 종사하는 자'로 넓게 정의한다. 또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사망 또는 중대한 위해를 가져올 개연성이 없는 환경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법의 특징은 행정부가 주도하는 법률이라는 점이다. 기준 제정부터 점검, 위반 통과와 제재금 부과까지 노동 당국의 역할이 매우 크다. 노동장관은 안전위생에 관한 기준을 제정할 권한을 갖는다. 실무는 노동부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이 맡는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까지는 과잉 규제를 비판하며 비용을 중시하는 산업계를 배려해 단속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안전이 중시돼 기준을 강화하고 단속 또한 엄격해졌다.

OSHA의 권한은 막강하다. 작업장에 불시 감독을 나가 점검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제재금을 부과한다. 규정을 위반하면 건당 1만2천934달러(약 1천454만여원)가 부과된다. 몇 건만 적발돼도 거액을 치러야 한다. 지적 사항을 개선하지 않으면 매일 추가 벌금이 가해진다.

행정부뿐만 아니라 법원도 기업에 무거운 책임을 지운다. 사업주가 기준을 어겨 소송을 당하면 벌금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겹겹의 부담을 떠안는 셈이다.

통상 어떤 행위가 불법임을 알면서도 저지르거나 과실로 범한 경우 법적 책임을 지지만, 일부 안전사고에는 '무과실 책임'을 묻는다. 위법성에 대한 인식, 즉 고의·과실과 관계없이 상황 발생 자체에 책임을 지게 된다. 환경, 의약 분야 등이 대표적이다.

노동 당국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사업주에 대한 행정부의 사전적 예방 조처와 제재가 매우 강하다"며 "법원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 英, '영국판 세월호 사고' 계기 산업재해에 기업·정부도 처벌

영국은 유럽 내에서도 산업 안전과 관련해 선진국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보건안전청(HSE) 집계에 따르면 2017∼2018년 1년 동안 직장 등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이는 144명으로 집계됐다.

2007∼2008년에만 해도 연간 사망자가 233명에 달했지만, 이후 꾸준히 줄어 2016∼2017년에는 135명까지 감소했다. 2013∼2014년부터 4년간 업무 현장 등에서 숨진 노동자는 연평균 141명이다.

유럽연합(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근로자 10만명당 작업장 내 치명상 발생률은 2015년 기준 영국이 0.51명으로 핀란드를 빼면 가장 낮았다. 독일 0.74명, 이탈리아 0.82명, 폴란드 1.06명 등으로 EU 평균(1.29명)에 비해 낮았다. 스페인은 1.91명이었고, 프랑스는 3.62명으로 EU 회원국 중 루마니아를 제외하면 가장 높았다.

영국이 처음부터 산업 안전 선진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1987년 '세월호 사건'과 흡사한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 호' 좌초사건이 발생했다. 벨기에 앞바다에서 승객과 선원 450여명을 태운 영국 해운사 소유의 배가 선원 실수로 차량을 싣는 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출항했다가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와 좌초됐다.

이 사고로 193명이 숨졌지만, 법원은 기업에 책임을 묻지 않고 선원만 처벌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에서 기업과 경영진의 책임을 외면한 판결이 이어지자 영국은 사회적 논의 끝에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이듬해 4월 6일부터 시행된 이 법은 산업현장에서 심각한 관리상 실책이나 부주의 등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 책임을 묻을 수 있도록 했다. 심각한 위반 시 상한선 없는 벌금 부과가 가능하며 유죄가 인정되면 관련 내용과 벌금 부과 사실을 공표해야 한다.

2011년 기업살인법을 적용한 첫 유죄 판결이 나온 뒤 주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이 법의 적용을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

런던 경찰청은 작년 6월 24층짜리 공공 임대아파트 그렌펠타워에서 화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과 관련해 소유주인 켄싱턴·첼시 왕립자치구, 건물 관리를 맡은 켄싱턴앤드첼시임대관리협회(KCTMA)에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검토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기업 안전의무 강화를 강제한 법 시행과 함께 산업 안전을 위한 대규모 투자와 예방 노력이 더해지면서 이후 산재 피해가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 = 일본 후생노동성
[사진] = 일본 후생노동성

◇ 日, 장시간 노동 건강안전에 초점…비정규직 수당 차별은 위법 판결

일본에서 노동 안전 내용을 담은 법률로는 '노동안전위생법'을 꼽을 수 있다. 이 법은 노동재해 방지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업자에게 노동재해 방지 책무를, 노동자에게 관련 조치에 협력할 것을 강조하며 일정 규모 사업장에 총괄 안전위생 관리자, 안전관리자, 안전위생추진자 등을 선임하도록 한다. 노동자의 위험 또는 건강상 장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도 담았다.

후생노동성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노동재해로 인한 사상자 수는 총 12만460명으로 전년보다 2.2% 증가했다. 사망자 수는 978명으로 5.4% 늘었다. 일본에선 최근 대형 노동재해 사고보다는 장시간 노동 문제가 부각돼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2015년 초과근무에 시달리던 대기업 '덴쓰'(電通)의 신입사원 다카하시 마쓰리(高橋まつり·사망 당시 만 24세)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 파문이 일었다.

올해 6월에는 노동개혁 법안인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시간외근무 시간의 상한을 한 달에 45시간, 1년에 360시간으로 정하고 이를 어길시 사용자에 징역과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같은 노동을 할 경우 같은 수준 임금을 주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천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최고재판소에선 같은 달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수당을 차별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이 처음 나왔다.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난해 2천133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노동안전·위생에 관해 적극적인 기업을 공표하는 '안전위생 우량기업 공표제도'를 2015년 6월부터 운영 중이다. 과거 3년간 중대한 법률 위반이 없고 노동자의 건강 증진과 정신건강 대책, 과중한 노동방지, 안전관리 등에서 적극적인 기업이 그 대상으로, 현재까지 36개사가 인정받았다.

후생노동성 산하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의 노사관계 부총괄 연구원인 오학수 박사는 "우리나라 노동 현장에선 속도를 중시하고 절차를 간과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과도하게 인건비를 억제하고 효율성을 중시하는 것은 노동재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고려하고 안전과 안심을 우선시한다는 가치에 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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