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인, 그리고 금융 강사
금융인, 그리고 금융 강사
  • 전병호 기자
  • 승인 2020.07.2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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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화 / 前 KB국민은행 지점장
유재화 / 前 KB국민은행 지점장

(서울=파이낸셜리더스) 주서영 기자 =  나는 종종 내가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곤 한다.

금융 강사로 지내고 있는 요즘도 자주 하는 질문이다.

최근 2년간 약 250여회 420여 시간의 금융 강의활동을 하면서, 나는 강사로서 수강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를 생각하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최근 여러 곳에 금융 강사로 소속되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은행원일 때와 비교한다면 시간활용의 내용은 사뭇 다르다. 은행원 일 때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퇴근 때까지 영업과 관리 등 은행 일에만 주로 집중하였다면, 퇴직 후의 일상은 전혀 다르게 지나간다.  때론 1시간 강의를 위해 5~6시간 이상을 길에서 소모해야 하고, ppt작성을 위해 며칠 밤을 보내기도 하고, 현직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에게 미루었던 주부로서의 소소한 가정적이고 개인적인 일들도 챙겨야 한다.

나는 대학졸업 후 1988년 은행에 중견행원으로 입행하였다. 그리고 2003년 1월 만 38세에 지점장으로 발탁되었으니 동기들 중에서 초고속으로 승진한 셈이다. 행원으로 8년,  대리과장 7년, 지점장 8년…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2010년 11월 퇴직까지 짧고 굵게 은행생활을 하였다. 처음 입행하여 동료들이 서로 잘한 것을 칭찬해주는 문화가 좋았고, 입행 1년 동안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여 책상을 닦고 사무실을 정리한 다음 틈틈이 읽은 규정집 덕에 실력 있는 직원으로 인정받으며 제법 은행 생활을 잘 해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IMF 등 구조조정의 시기마다 퇴직의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남편과 함께 은행에 다닌다는 이유로. 함께 은행에 다닌다는 이유로 한 번도 은행 일을 해태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음에도 구조조정의 순간에는 언제나 퇴직 1순위로 오르곤 했다.

공공연히 오르내리던 얘기로 조직이 한 사람을 먹여 살리기도 어려운데 둘이 다니는 사람이 그만두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대상은 항상 여직원인 내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성차별 그리고 합리적이지 않은 주장이었지만, 또 사실 부부 둘 중 한 사람은 조직에 남아있어야 하니 이렇다 대놓고 불만을 얘기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이래서 어쩌면 부부 중 1명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 가장 뒤탈이 없는 구조조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으리라. 벌써 은행을 떠난 지가 7년이 넘었으니 지금은 어떤지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선진국에 진입하는 대한민국의 조직에서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향후에도 공정한 기준에 의해 또는 최소한 공정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로서의 기준을 가지고, 특히나 문서에 없는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부당한 압력이 더 이상은 없기를 바란다.

은행원 생활을 되돌아보면,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흐뭇했던 순간들이 있다. 전세자금 대출을 해 주었던 고객이 음료수를 사들고 와 “덕분에 이사 잘 했다. 고맙다”고 두 손을 덥석 잡던 일. 통장에 소액 들어있던 고객에게 문제가 있어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 문제를 해결해 주었더니 얼마 뒤에 타은행의 고액 예금을 찾아와 수신 1등 고객이 되었던 일… 수없이 많은 장면들이 떠오른다. 예기치 않게 어느 날 신규지점장으로 발탁되어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지점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자신감과 설레임도 컸다. 또한 나의 색깔로 한 점포를 경영해 본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 이었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마케팅 방안을 찾고,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수립했다. 그날도 업무종료 후에 직원들과 점주권을 섭외하기로 약속한 날 이었다. 본점으로부터 저녁에 담당 부행장과의 만찬자리가 있으니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오늘 직원들과 선약이 있으니 안 된다고 하였다.  훗날 그 이야기를 들은 주변사람들은 나보고 간이 크다고 했다.  또 몇 년 후에 PB그룹의 부행장이 본점으로 불러 “센터장을 맡아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그 역시 나는 거절하였다. 모두 하고 싶어 하는 자리인데 의아하다고 했다.  나는 개인점포가 좋았고, 그곳에서 소소한 고객들과 함께하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고객들이 더 많은 부를 키우고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좋지만, 내게는 소시민이 작은 돈을 모으고 불리고 은행의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고, 또 사업을 시작하고 이렇게 그들과 함께 커가는 것이 좋았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많은 경우에 내 스스로 원하는 자리에 있으려 했고 상당부분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보이는, 보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으리라. 현직에 있을 때는 대다수의 은행원들처럼 맡은 바 소임에 다하고자 하였다. 계속기업으로서의 조직을 위해 일하지만, 그 곳에는 반드시 직원과 고객이 함께 있었다. 건강한 사고와 실천만이 고객과 직원, 조직이 다 함께 생존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지금도 나의 은행원 생활을 후회 없게 만들어 주었다 생각한다.

나는 지금 금융 강사다. 미래세대인 초·중·고·대학생, 사회복무요원과 노인, 다문화가족 등 금융취약계층이 주로 대상이다. 나의 그동안의 금융지식과 경험이 그들에게 금융격차를 해소 해 주고 미래 건전한 금융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금융인으로서 더없이 기쁜 일이다. 나는 지금 현직에서 은퇴하고 금융 강의를 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금융인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나의 금융인으로서의 삶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아직도 지점장이라고 불러 준다. 기분 좋은 호칭이다.

그리고 요즘 나의 또 하나의 호칭, 선생님이다. 사실 나는 한때 선생님이 되고자 하였다.  중등교사 자격증도 받고, 서울시 사립 중등교사 시험에도 합격하고 서울소재 모 여상에서 잠깐이지만 강의도 했다. 그러나 수중에 돈도 없었지만 선생님이 되기 위해 거쳐야 했던 부조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수강생들이 선생님이라 부르는 금융 강사가 되었다. 나는 강사로서 거의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얼마 전에는 자활센터에 강의 갈 일이 있었다. 강의내용을 좀 쉽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일정이 촉박해서 의뢰가 왔고 바쁜 일정 탓이기도 하였지만, 그동안 만났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분들’이겠거니 예사로이 생각하고, 준비한 PPT 강의안을 가지고 갔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해당하시는 분들이었다. 2시간에 걸친 강의였는데, 참여하신 분들이 열심히 강의에 집중하고 호응해 주셨다. 너무나 고맙게도. 강의구성이 대략 우리가족의 버는 돈·쓰는 돈 계산 해 보기, 카드사용 시 유의점, 저축과 투자·보험 알기, 금융사기 예방, 우리나라 연금제도, 각종 서민금융제도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분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니, 20명 거의 다 소득은 정부지원금이 전부고 신용카드를 가진 분은 한 분도 없으셨고 체크카드를 가진 분도 3분이 전부였다. 그냥 현금으로 그때그때 사용하고 저축은 생각도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전부라고 하였다.

결론은 강의안의 50%이상이 쓸모없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분들은 “선생님 선생님”하시면서 고맙다고 하셨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겁고 착잡하였다.  안일하게 생각하고 준비한 자신을 자책했다.

물론 금융 강사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 것이다. 매일매일 많은 수강생들과 만나면서 때론 함께 성장하고 같이 배우면서 보람을 느낀다.

은행에 입행하기 전 약 3년간 보험회사에 근무하고, 은행 퇴직 후 2년간의 신용정보회사 근무를 합하면 금융인으로서의 생활은 약 28년간이다. 잠시 퇴직 후에 상담심리공부로 옆길로 새기도 하였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사람공부가 곧 금융, 금융 강의 등에 기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퇴직 후에 곧바로 교육대학원에 진학하여 20대 젊은 교우들과 교류하며 거의 만점(4.42/4.5)에 육박하는 성적으로 상담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자격증도 따고 무료 심리상담도 하였다. 그러나 돌아서 다시 나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금융인으로서의 삶으로 돌아왔다. 금융의 공급자인 금융회사의 조직원으로서가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입장에서 금융을 바라보고, 금융소비자를 교육시키는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도 금융 강사인 나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다. 내가 혹여나 금융 공급자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경계한다. 금융소비자가 건전한 상식과 행동으로 금융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금융 강사로서 더없이 보람 된 일일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나 그 후에도 나는 많은 사람들이 금융을 모른다는 이유로 잘못된 금융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거나 또는 자의적으로 잘못된 선택으로 삶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그곳에 내가 그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작은 영향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의 미래 세대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이끌어 가는데 금융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면 금융인으로서 그리고 이제는 금융 강사로서 얼마나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일까?  나는 오늘도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은행원으로서, 금융인으로서의 삶은 더욱 의미 있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지 않을까

(글쓴이 = 유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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