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금융은 없었다"...이것은 ‘혁신’인가 ‘관치’인가
"지금까지 이런 금융은 없었다"...이것은 ‘혁신’인가 ‘관치’인가
  • 파이낸셜리더스(Financial Leaders)
  • 승인 2019.04.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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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종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전국퇴직금융인협회 자문위원
권의종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전국퇴직금융인협회 자문위원

(서울=파이낸셜리더스) 파이낸셜리더스(Financial Leaders) = 금융산업이 건강해야 실물경제 제대로 뒷받침...우리에게 긴요한 건 ‘혁신 강요’보다 ‘규제 개혁’

금융위원회가 이번에 크게 한 건 했다. 기업금융을 주제로 대통령 주재 하에 혁신금융 비전선포식을 가졌다. 2008년 부처가 발족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다. 금융의 패러다임을 가계금융과 부동산담보 위주에서 미래성장성과 자본시장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위험을 공유하고 혁신성장을 이끄는 금융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의지다.

대출, 자본시장, 정책자금 등 분야별로 맞춤형 정책과제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현장 방문을 통해 스타트업, 벤처기업, 주력산업 등에서 수렴된 생생한 의견을 참고했다니 더 믿음이 간다. 기업여신시스템 혁신은 그중 압권이다. 3년 동안 연차적으로 추진된다. 우선 금년 안에 일괄담보 관행을 정착시킬 계획이다. 부동산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을 다양한 동산자산 일괄담보 대출로 바꾼다.

2단계로 내년 말까지는 미래 성장성·수익성 평가 인프라를 마련하고 과거 매출액 등 성과 위주의 신용평가에서 기업경쟁력, 상거래정보 등도 평가 대상에 포함시킨다. 마지막 3단계로 2021년까지 포괄적 상환능력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든 자산, 기술력, 영업력 등을 종합 평가하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를 통해 향후 3년간 혁신 중소‧중견기업에 100조 원의 자금이 공급된다. 기술금융 90조 원, 일괄담보대출 6조 원, 성장성기반 대출 4조 원이 세부 목표다.

금융을 기업의 동반자로 인식, 혁신성장을 통해 기업과 금융산업이 함께 가는 비전에 공감하지 않을 자 없다. 금융위원장의 말마따나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금융도 혁신되는 게 당연하다. 기술혁신을 선도하고 위험을 분산‧공유하는 금융시스템을 구축, 기업의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하루속히 뿌리 내려야 한다.

금융위원회, 혁신금융 추진 의욕적...‘기업여신시스템 혁신’ 3개년 계획은 그 중 압권

기대가 크나 걱정도 따른다. 실행력을 높일만한 유인책이 약한 게 우선 마음에 걸린다. 고작 인센티브로 거론되는 게 취급자에 대한 면책조치 정도다. 금융회사가 혁신산업을 지원하며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해당 임직원의 고의, 중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면 면책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언이다. 세심한 배려이기는 하나 성과가 제대로 발휘될지 의문이다.

면책조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동원했던 방식이다. 효과가 별무했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당부한 터라 혁신 지원에 따른 감사 지적은 없을 걸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하기 힘들다. 과거의 예로 보아, 면책사항에 대한 지적은 면할 수 있으나, 다른 쪽에서 지적될 가능성은 되레 커질 수 있다. 풍선효과가 걱정된다. 일단 감사가 나오면 뭔가는 지적해 가려는 적발위주의 감독 관행 탓이다. 이 버릇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금융회사 건전성 악화도 염두에 둬야 한다. 기업대출 늘리기와 일자리 만들기를 지나치게 강요할 경우 금융건전성 훼손은 필연적이다. 금융산업의 취약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무리하게 기업 지원에 나설 경우 동반부실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다 생기는 부실의 최종 책임은 오롯이 국민 몫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금융회사 부실로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전례를 반복해선 안 된다. 그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소한 얘기일지 모르나 용어 선택에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다. ‘혁신금융’의 의미 자체가 모호하다. 오해를 살 소지가 다분하다. ‘금융산업을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혁신금융을 공급하겠다는 것인지’ 가늠조차 어렵다. 실제로 이 용어를 두고 언론에서도 혼란이 빚어졌다. 행사 3일 전 갑작스런 통보에 ‘혁신금융’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리둥절했다.

기업대출 늘리기 강요-금융사 건전성 훼손...금융산업에 대한 고리타분한 인식 바꿔야

‘묵은 조직이나 제도·풍습·방식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따라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개혁이 발표될 걸로 다들 짐작했다. 혁신금융의 정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금융위원회 간부의 답변 역시 엉뚱했다. ‘혁신금융이란 혁신성장을 지원하는 금융’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작위적 정의를 내렸다. 솔직히 누가 봐도 ‘혁신금융’보다는 ‘혁신성장 금융지원 방안’의 표현이 적절했다.

금융산업에 대한 고리타분한 인식이 문제다. 아직도 금융을 독자적 산업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지원 부문쯤으로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다. 그렇다고 한국 금융산업이 어디 체질이나 강한가. 서울의 국제금융경쟁력 순위는 36위에 불과하다. 부산은 이보다 더 낮은 46위다. 그러고도 제3 금융중심지를 만들려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작금의 금융권 사상최대의 흑자 행진도 알고 보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예대금리 차이에 따른 이자이익 확대 덕분이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 했다. 바둑 격언 중의 하나다. 먼저 내 말이 산 뒤에야 상대방 말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정책 수립에서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경제의 혈맥인 금융산업이 건강해야 실물경제도 든든히 뒷받침할 수 있다. 다정도 병이라고, 혁신도 지나치면 관치가 된다. 관치가 도지면 나라가 흔들린다. 망국병으로 번진다.

국내 금융산업은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글로벌화의 진전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 등으로 생사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려있다. 수익성 개선과 경쟁력 강화에 한눈 팔지 않고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이다. 지금 대한민국 금융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혁신 강요’가 아니라, ‘규제 개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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