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진 내 집 마련의 꿈… 결혼도, 출산도 미루는 청년들
멀어진 내 집 마련의 꿈… 결혼도, 출산도 미루는 청년들
  • 김미희 기자
  • 승인 2018.10.02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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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모르는 부동산 가격 고공행진에 ‘인륜지대사’ 포기 속출
사랑하는 사람 있어도 한숨만…“집 한 칸 없는데 자식은 무슨”
부동산정보 인터넷카페·앱 인기 폭발…“수도권 주택 구입 하늘의 별따기”

#1. “벼랑 끝까지 몰렸을 때도 찾아가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해요. 단 3평이라도 마음 편히 지낼 곳이 있었으면 하는데 지금 서울에서는 그게 불가능해진 것 같아 씁쓸하네요. 이렇게 스트레스받을 바에야 그냥 땅바닥에 텐트를 치고 살고 싶어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30) 씨는 내년 1월 월셋집 계약만료를 앞두고 이사할 집을 찾고 있다. 인근 아파트 단지의 가격을 검색해보니 매매 기준 10억 원을 넘지 않는 곳이 없다. 10평 남짓한 아파트도 6억 원을 웃돌았다. ‘나만 빼고 다른 서울 사람들은 모두 자산가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씨에게는 3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있지만, 그에게 결혼은 아직 사치다. 여자친구와 돈을 합하면 서울에 어지간한 아파트 전세는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오판이었다. 여자친구는 지방에 신혼집을 마련하자고 하지만 이씨는 서울을 떠나고 싶지 않다. 4년간 몸담아온 회사를 관두고 지방에서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2. “대출을 잔뜩 받아서 전셋집을 얻었는데 지금 애를 낳는다고 해봐요. 둘 중 한 명은 일하지 않고 아이를 돌봐야 해요. 맞벌이한다 해도 한 사람 월급은 고스란히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나가겠죠. 그럼 우린 계속 빚더미 위에서 살아야 해요. 2년마다 어디로 전셋집을 옮겨야 하나 전전긍긍하면서 말이죠.”

지난해 6월 결혼한 대학원생 석모(29) 씨는 경기도 고양시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도, 남편의 회사도 서울에 있는데 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서울에 비빌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대신 푸들 한 마리를 ‘아들’로 입양했다. 석씨는 “집에서 학교나 회사까지 1시간 정도 걸리다 보니 퇴근해서 집에 오면 오후 8시, 저녁을 먹고 나면 후 9시인데 도대체 어느 틈에 아이를 보겠느냐”며 “아이를 키울 돈도, 돌볼 시간도 없으니 애를 낳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부부들이 우리만은 아닐 것”이라고 털어놨다. 연일 고공행진 하는 서울 집값에 비례해 이씨, 석씨와 같은 20∼30대 청년들의 절망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어느 정도 모았다고 생각한 이들조차 서울 아파트 가격을 검색하다 보면 한숨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서울 시내에 아파트가 이렇게 많고 많은데 두 발 뻗고 잠잘 집 하나 갖지 못했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거나 출산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는 등 인생의 대소사를 치르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집을 사보겠다며 부동산을 찾아오는 청년들은 가격을 듣고 화들짝 놀란다. 특히 결혼을 앞둔 이들은 재정적으로 지원해줄 부모와 함께 방문하는 경우가 다수다. 누군가의 조력 없이 서울에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 돼버린 것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7년째 공인중개업을 하는 강모(60) 씨는 “시세를 알아보지 않고 인기 있는 동네라고 해서 무턱대고 찾아온 신혼부부 중 열에 아홉은 가격을 듣고 그냥 발길을 돌린다”고 말했다.강씨는 “올해 초 집을 사겠다고 찾아온 신혼부부 중에 전세자금 중 융자 비율이 80%를 넘어서는 경우가 유난히 많더라”며 “이렇게 되면 집주인의 허락이 필요한데 집주인으로서는 빚이 많은 게 싫으니 대부분 거절한다”고 전했다. 인근에서 다른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김모(59) 씨는 “아파트 매매가가 10억원이 넘다 보니 신혼부부가 아파트를 사는 일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며 “결국 시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빌라나 주택으로 눈을 돌리곤 하는데 막상 거기는 가보면 실망스럽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내 집을 사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상황이다 보니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부동산 정보를 비교·분석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이용자가 몰리고 있다.

네이버의 한 유명 부동산 카페는 8월 한 달간 조회 수가 1억1천만 건을 넘어섰다. 2006년 이 카페가 개설된 이후 최고 기록이다. 지난해 하반기 조회 수가 4만∼6만 건이었던 것과 비교해 눈에 띄게 폭증했다. 원하는 지역의 집값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실거래가와 호가를 비교해주는 한 앱은 내려받은 횟수가 10만건을 넘어서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접속 오류가 자주 발생해 사용자들이 서버를 확충해달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재테크 모임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 아파트를 구매한 직장인 김모(32) 씨는 “회사에 다니는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지 않으면 수도권에서 집을 산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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