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저자 : 호사카 유지)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저자 : 호사카 유지)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9.07.12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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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경민대학교 외래교수
이용덕 경민대학교 외래교수

(서울=파이낸셜리더스) 한지혜 기자 = 독서 감상문
책자명 :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저자 : 호사카 유지)
제출자 : 이 용덕 (現 경민대학교 외래교수)

일본의 건국신화와 한국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고구려신화를 보면 여성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아마테라스의 경우와 고구려 신화에서 나오는 동명성왕을 낳은 유화가 그 당사자들이다. 그리고 일본과 백제간의 고대사에 있어 백제에서 건너간 왕족이 일본 천황계의 모계가 되는 것은 일본과 백제 양국 간 역사적 유대가 깊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백제와 고구려는 한자, 불경, 서예, 사서삼경, 도자기 등 많은 문화를 일본에 전수하였고, 조선과 일본 양국은 중화질서 내에서 小中華를 구성하면서 지속적인 역사관계를 맺어왔다. 이런 한 일 양국 간의 역사에 있어 국가의 체제, 즉 국체를  유지하고 발전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세력집단이 조선의 선비와 일본의 사무라이 이다.

조선은 文의 국가이고 일본은 武의 국가라고 일컬어진다. 조선은 거란, 여진 등과의 국경지역에서의 분쟁을 겪었고 청에 의한 병자호란 등을 겪었다. 그러나 국가 통치이념은 충효를 중시하고 文을 중시하는 성리학의 나라였다. 일본은 두 차례에 걸쳐 몽골제국의 침입을 받았으며, 국내적으로는 12세기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무신정권 이후 천황세력의 지위를 둘러싼 내전이 종종 발생하였다. 조선은 중국에서 공자 등이 언급했듯이 東邦禮義之國, 東國, 海東이라고 일컬어졌다. 유교에서 말하는 仁과 義에 기반한 학문과 도덕과 예절을 숭상하는 유교의 나라라는 것이다. 일본은 앞서 말했듯이 막부의 형성이 武家政權(무가정권)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무인을 중시하였고, 의리와 충절을 중심 가치로 하는 사무라이가 중용되는 崇武의 국가였다. 문과 무가 대치되는 면도 있지만 이 두 개념은 文武兼全(문무겸전)이라는 말이 있듯이 상호보완적인 측면도 있다.

文弱(문약)과 武備(무비)라는 말은 전시에는 무(무인, 사무라이)를 숭상하고 평화 시에는 문(문인 : 학자, 선비)을 우대한다는 뜻이다. 동 서양의 고대사를 보면 전쟁이나 내란은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 관료세력들은 학문뿐만 아니라 무예도 반드시 갖추어야 했다. 조선시대에도 문관을 뽑는 문과시험에 말 타기나 활쏘기 등도 포함되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도 정유재란 때 일본에 억류되었던 조선의 학자였던 강항에 의해 일본에 성리학이 전파되면서, 천성을 깨닫고 덕을 닦으라는 내용의 성리학을 알게 되었다. 이에 사무라이들은 인격도야를 위한 학문의 중요성을 중시하였고 조선에서 통신사가 오면 詩書畵(시서화)를 배우기를 청하였다. 자신이 지은 시문과 서화 등을 평가받아 막부를 뒷받침하는 세력으로서 자세를 높이고자 노력하였다.   

조선은 인조 시대에 2차례에 걸친 청에 의한 굴욕(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당했다. 이 병자호란 전, 선조 제위식이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 조선은 명나라의 도움을 입은 바 있고 이를 일컬어 再造之恩(재조지은)이라 한다. 따라서 병자호란 시에 조선의 척화파 선비들은 명의 재조지은에 대한 생각으로 즉, 조선의 명에 대한 불변의 사대의식에 의하여 청나라에 굴복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후에 중국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三學士*1)의 경우는 은혜를 실행으로 옮긴, 유교적 충효를 다한 경우에 해당한다. 일본의 경우도 추신구라에서 보듯이 주군의 복수를 마친 후 47인의 사무라이가 함께 최후를 마친 것은 주군에 대한 충성을 다하려는 것이었다.
      
19세기 중반 등장한 고종의 조선은 외척들의 세도정치와 대원군의 압제에 의하여 나라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조정의 세력들이 서양의 제반세력을 배척해야 한다는 유교적 이상론에 휩싸여 개화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東道西器*2)를 주장하는 세력과, 尊王揚夷*3)를 주장하는 세력들 간의 갈등은 국가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일본은 사츠마와 죠슈의 사무라이정신이 에도막부를 타도하고 명치유신을 낳았다.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이 근대국가로 발돋음 하는 和魂洋才 
*4)의 개화를 이루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다만 다이쇼시대의 군부의 반란, 태평양전쟁 발발에는 군부의 잘못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책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조선유학자들의 역할에 대하여 주목하게 된다. 저자는 에도막부가 시작되어 침략성이 사라진 것에 대하여 에도막부 자체의 통치능력 뿐만이 아니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 유학자들의 공로가 크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 유학자들에게 성리학을 배운 인사들을 막부의 사상교육 책임자로 삼았던 것이다. 에도막부는 성리학을 막부의 정통사상으로 삼아서 사무라이들에게 조선선비와 같은 이념을 가지고 주군을 섬기도록 했다. 그래서 같은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은 조선과 일본은 교린관계를 갖게 되었으며, 명치유신의 지도자들이 征韓論*5)을 주장하기 전까지 긴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끝)

 


*1) 三學士(삼학사) : 홍봉한, 윤집, 오달제
*2) 東道西器(동도서기) : 동양의 도덕과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룩하자는 사상
*3) 尊王揚夷(존왕양이) : 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하는 사상
*4) 和魂洋才(화혼양재) : 일본의 전통적인 정신과 서양의 기술을 말하는, 근대화시기의 일본                       의 구호
*5) 征韓論(정한론) : 에도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초기에 걸쳐 일본에서 등장한 조선침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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