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반을 은행에서... 앞으로는 무엇을 하면서 살까?
인생의 반을 은행에서... 앞으로는 무엇을 하면서 살까?
  • 한지혜 기자
  • 승인 2020.05.26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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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란 前 KB국민은행 지점장)
(홍영란 前 KB국민은행 지점장)

(서울=파이낸셜리더스) 파이낸셜리더스(Financial Leaders) =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이 어느 듯 6학년이 되어 버렸다. 교복을 입고 면접 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 데 40여 년간의 긴 장정을 마치고 이제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와 과거를 돌아본다. 은행에 처음 입행했을 때 ‘신속, 정확, 친절’이라는 액자가 있어 무슨 말인가 궁금했는데 은행의 특성상 금전을 다루는 업무이고 서비스업이기에 정확하고 신속하게 업무처리를 해야 한다는 지겨운 교육을 통하여 들어면서 세뇌가 되어 긴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특히 친절이라는 용어 앞에 서비스직원으로서 인사하는 법, 말하는 법, 미소 짓는 법 등 거의 스튜어디스 수준의 자세와 외모를 갖추고 대고객 업무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업무처리 시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친절하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업무처리를 함으로써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좋은 출발을 하게 되었다. 여행원으로서 단순 입출금 업무를 하였지만 은행원이라는 좋은 직장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활기찬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은행은 참으로 좋은 직장이었다. 봄가을에 한번 씩 야유회를 갔다. 야유회에 가서 직원들과 재미있게 오순도순 얘기하고 스트레스도 풀었다. 꽤나 예쁜 나의 모습에 남자직원들의 인기도 많았다.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은행이라는 직장이 이렇게 좋은 직장이구나 하면서 무척 자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될 정도로 봄가을 야유회는 나에게는 환상의 시간들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은행이라는 곳이 금전을 다루는 기관이라서 매우 정확해야 했고 또한 1원이라도 틀리면 안되는 엄격한 곳이기에 고객으로부터의 스트레스, 업무적 스트레스가 일반회사와는 다른 직업이라서 봄가을 한번 씩 야유회를 가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만 황홀하고 뿌듯하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꿈의 직장이었다.

세월은 흘러 여느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승진을 하게 되었고 은행의 꽃이라는 지점장까지 승진을 하게 되었다. 지점장이라는 직책은 나에게는 과거 입행했던 시절의 꿈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는 아주 멋진 자리였다. 나만의 공간이 있고 지시할 직원들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은행 서열로 따지면 은행장, 부행장, 본부장 다음의 4위의 높은 직책이었다. 지방에서 여상을 졸업하고 긴 세월을 한 직장에 몸담아 서열 4위라는 막강한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은 과거보러간 시골 선비가 장원급제 한 거나 진배없었다. 연봉 상승은 물론이고 승용차, 핸드폰, 업무추진비등 혜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날씬한 몸매에 뽀얀 예쁜 얼굴로 지점장 명함을 기업 대표들에게 내밀었을 때 반응이 너무 좋았다. 덕분에 많은 실적을 거두어 좋은 성적으로 지점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한 6개월 동안 인생의 행복을 느끼면서 보람을 느끼면서 나름의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점장들과 모여 골프도 하고 기업 대표들과 함께 골프는 물론 많은 교제를 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신분 상승이었다. 

그러나, 꿈속의 좋은 시절은 어디로 가고 업적평가의 많은 지표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업무추진을 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또한 직원관리, 대고객관리, 민원처리, 본부장 지시사항, 경영현안 분석, 실적 증대 등 모든 것이 지점장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차츰 고민도 하게 되고 문제 있는 직원들과의 상담을 통한 관리 등등 지점장 자리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역시 세상에는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고, 지점장만 되면 정말 좋겠다는 과거의 생각과 지점장이 되었을 때의 기쁨이 어느 듯 마음의 근심으로 한구석에 자리 잡게 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점포가 소속된 지역본부는 30개의 지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달에 한번 하는 점포장회의를 제외하고는 전체 점포장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몇 개의 점포로 구분하여 인근 점포별로 협의회를 구성하여 상호 정보교환도 하고 조직의 발전을 위한 토론도 하고 친목도모도 하게끔 구성되어 있다. 우리지역 협의회는 8개 점포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는 거기서 총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씩 모여 좋은 시간들을 가지면서 조직에 대한 불평불만도 토로하고 서로들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자리였고 특히 여자점포장이 총무라서 그런지 참석 율이 좋고 모임도 아기자기하게 모범적인 협의회가 운영되고 있었다. 어느 날 협의회 모임 때 K지점장이 1박 2일 골프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했다. 다들 좋다고 하면서 영암에 있는 골프장에서 골프도 하고 좋은 음식도 먹고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고 겸사겸사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나들이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멤버들은 협의회 인원이 8명이니 2팀으로 하고 한 팀을 외부에서 초청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구성 멤버는 남자 7명 여자 5명으로 세 팀으로 해서 출발하기로 했다. 승용차는 3대로 4명씩 출발을 하게 되었다.

출발 당일은 현지사정이 밝은 L지점장이 저녁 식당을 예약해서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지긋지긋한 업무를 벗으나 모처럼의 자유를 느끼면서 마음껏 저녁을 즐겼다. 물론 술은 말할 것도 없이, 처음에는 얌전하게 수작을 하게 되었다. 한잔 두잔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취기도 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린 순수한 소년소녀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아주 좋은 자리로 스스럼없는 죽마고우처럼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처음 은행에 입행했을 때와 지점장이 되었을 때 보다 더 좋은 기분으로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지점장의 스트레스로 억눌려 있던 내 마음이 새장에 갇혔다가 자유를 얻은 한 마리의 비둘기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흥에 겨운 P지점장이 노래방을 가자고 제안을 했다. 다들 취기가 있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오케이를 합창했다. 

노래방에 도착한 12명의 청춘남녀(?)들은 각자의 장기를 노래와 춤으로 표현했다. 노래방의 분위기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르익었고 그야 말로 이 나이에 또 지점장으로서 이렇게 놀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젊은이들 뺨치게 체력과 노래실력이 뛰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흥이 난 J지점장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추면서 신나게 뛰어 놀았다. 이어서 한명 더, 또 여자지점장도 함께 테이블로 올라가서 부둥켜안고 춤을 추었다.

한쪽에서는 테이블이 무너질까봐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한 쪽에서는 더 신이 나서 광란의 춤과 노래를 했다. 정말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목과 몸을 마음껏 놀리고 있었다. 참으로 신나고 재미있고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고 모두들 숙소에 와서 내일 있을 빅 매치를 위해 잠을 청하게 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젯밤 노래방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봤다. 평상시에는 너무나 얌전하고 Gentle한 사람들이 그렇게 광란의 밤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의 경우로 추측해 보건데 아마 이 사람들이 은행 지점장으로서의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취한 김에 그러한 행동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남들이 볼 때는 보기 좋고 자랑스러운 자리이지만, 물론 그 자리가 자랑스럽고 대단한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당사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은 그 자리에 합당한 것이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이제 은행을 퇴직하고 나니 지난 40여년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입행 때부터 승진하고 가족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참고 생활했던 생활, 보너스를 받고서 가족들과의 외식 등 영욕의 시간들이 내 인생의 40년이란 큰 부분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너무 오랜 세월을 한 곳에서 일했고 이곳이 아니면 내 인생이 큰 일이 날 것이라는 강박관념으로 길들여져 왔던 것이다. 은행이라는 직장이 나에게는 꿈이었고 내 가족의 행복의 원천이었고 내 인생의 중심이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이제 나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다. 물론 내 주위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친구들과 선후배가 있긴 하다. 물론 나 같은 과정을 겪어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비슷하게 느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인생 2막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제는 어떻게 살까? 과거처럼 소속된 울타리도 없다, 현직도 아니다. 어느 누구도 나를 과거처럼 대해주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기준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을 나 혼자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다행이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그나마 오랜 직장생활의 결과인 재정적인 여유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40년 이상의 직장경력으로 많은 지식과 노하우와 서툴지 않은 세련됨이 있다. 이제는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살기로 다짐해본다. 나의 남은 시간은 약 30년 정도 될 것이다.

첫째 나의 노하우와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 기부하는 삶을 살기로 할 것이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감사하고 행복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지나고 보니 때로는 허무한 생각이 든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항상 똑같은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 보람되고 참된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어차피 세월이 흘러 나의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천상병 시인의 ‘귀천’처럼 하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늘로 돌아갈 때 후회하지 않고 이 세상 소풍 잘하고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둘째는 나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들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물려주고 가는 삶을 살기로 할 것이다. 지구라는 소중한 자원을 나 혼자 이용하고 나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후손들도 나와 똑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터전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전하는 마음을 가지고 환경보호단체 등에서 활동하고 싶은 것이다.

셋째로 이기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건강관리를 잘하여 하늘로 돌아갈 때 까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건강하게 활동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건강관리 비용이 천문학적이기에 나만이라도 그 비용을 불우한 이웃에게 쓸 수 있길 기대하면서 건강관리를 잘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작고한 고 최희준 가수의 ‘하숙생’이라는 노래도 있듯이 인생은 나그네의 길이기에 그냥 지나가는 것이므로 욕심을 내려놓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이세상은 더욱 살아갈 가치가 있는 낙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내 마음을 강하게 누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나의 삶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 행복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고 기쁘고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글쓴이 =  홍영란 前 KB국민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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