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류지(法隆寺)의 백제관음 불상과 정문부(鄭文孚)의 북관대첩비
호류지(法隆寺)의 백제관음 불상과 정문부(鄭文孚)의 북관대첩비
  • 주서영 기자
  • 승인 2020.08.03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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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셜리더스) 주서영 기자 = 

일본 나라 호류지의 백제관음
일본 나라 호류지의 백제관음

- 호류지의 백제관음 불상 
올해 초에 호류지의 백제관음 불상이 23년만에 두번째로 호류지를 떠나 국립도쿄박물관에 약 2달간 전시된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이 백제관음 불상은 1997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처음 전시 됐고 직후 도쿄, 나고야, 후쿠오카 등 일본 국내 박물관 6곳을 순회했다.

그리고 이번에 두번째로 호류지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문득 25년전 1995년도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1995년 은행 신탁부에서 근무할 때 일본국 『다이와 증권』의 초청으로 약 2개월간 도쿄에서 채권 연수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이 무렵 그 유명한 고베 대지진이 일어나서 삼성물산 오사카 지점에 근무하고 있던 친구집을 주말을 이용해서 방문하여 혼자서 고베, 나라, 교토, 오사카 등지를 방문 관광할 기회가 있었다.

고등학교 역사책에서 배웠던 고구려 담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금당벽화를 보기 위해서 호류지를 방문 하였는데 금당벽화를 제대로 찾지를 못해 실망하고 있던 차에 백제관음 불상을 보전하기 위해서 성금을 모은다는 안내 표지판이 있는 것을 보고 화살표를 이리 저리 따라 갔더니 안쪽 후미진 목조건물안에 내 키보다 훨씬 큰 높이 2m 10cm의 목조 백제관음 불상이 흡사 늘씬한 여성처럼 쭉 뻗은 자세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그 때 그 순간의 기억이 이번 기사를 보면서 떠올려졌다.

그때까지 호류지에 이렇게 휼륭한 백제관음불상이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을 역사책에서 보거나 들은 적이 없었다.

오늘날 일본의 실질적인 국보1호로 일본 각지에서 일본인들이 나라의 호류지를 찾아 가는 것은 이 백제관음을 보기위해서다. 그만큼 일본인들의 찬양을 받고 있는 것이 백제에서 건너간 이 백제관음 불상이다.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2018년도에 백제관음 불상을 한번 더 만나 보기 위해 호류지를 재방문하였다.

모든 것이 많이 변해서 백제관음 불상을 찾을 수가 없어 한참을 헤메다보니 95년 당시 성금을 모으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 성금으로 “보물전”을 지어 그 속에 모셔두고 있었다.

안내서에는 백제라는 표현을 그 어디에도 없고 일본의 아스카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라고만 표시되어 있었다.

조소앙 선생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북관대첩비를 처음 마주 했을 때의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어 진다. 백제관음은 백제의 불상조각가가 한 둥치의 녹나무로 만든 입상이다.

녹나무란 좀약을 만드는 방충제의 원료가 되는 목재로 벌레가 먹거나 쉽사리 썩지 않는다고 한다.

백제인이 슬기롭게 만든 이 녹나무 불상은 장장 1300년을 일본국 터전에서 줄기차게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에서는 녹나무가 자생하지 않는다고 하고 본래부터 고대 일본 특산 나무를 가지고 만든 불상이라는 논문이 1971년대 나타나서 이 백제관음 불상은 백제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녹나무가 자생하고 있고 호류지 고문서에 『백제에서 건너왔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데도 일본은 교과서에나 대외적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일본에서 제작되었다고 거짓 기술하고 있다.

프랑스 지성 앙드레 밀로가 “일본 열도가 침몰할 때 단 하나만 가지고 간다면 이것을 택하겠다”고 한 것이 이 백제관음 불상이다.

또한 8.15 해방 이후 우리 정부가 일본에 요청했던 “한국 문화재 반환 청구 제1호”가 이 백제관음 불상이다.

나라 호류지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이 백제관음 불상을 만나보기 바란다.

일본 야스쿠니에 방치되어있던 북관대첩비
일본 야스쿠니에 방치되어있던 북관대첩비
1톤이 넘는 머릿돌을 이고 있던 북관대첩비
경복궁의 북관대첩비

 

- 정문부의 북관대첩비

 북관대첩비는 숙종 34년 1709년에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에서 정문부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 의병이 함경도를 침략, 정복한 가토기요마사의 일본 정규군을 함경도 각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완전히 쫓아내고 함경도를 수복한 승리의 기록을 1500여자의 비문으로 함경도 길주(오늘날 북한 김책시)에 세운 일종의 전승 기념비이다.

· 1905년 러일전쟁 때 함경 지방에 진출한 일본군 제2예비사단 여단장인 이케다 마사스케(池田正介) 소장이 함경도 주민들을 협박하여 비석을 파내 일본으로 옮겨 군국 일본의 상징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하였다. 일본측에서 보면 조선의 민족정기 말살을 위한 역사적인 기념물을 제거하는 차원이고 일본측의 패전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은 열등의식의 반증인 것이다. 조선의 전승기념비가 일본의 전몰자들

1톤이 넘는 머릿돌을 이고 있던 북관대첩비
1톤이 넘는 머릿돌을 이고 있던 북관대첩비

 

을 기리기 위해 만든 야스쿠니 신사에 함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북관대첩비를 1909년 일본 유학생이었던 조소앙 선생이 우연히 야스쿠니 신사에서 보게 되어 울분을 참지 못하여 “소해생, 이라는 필명으로 대한흥학보 제5호(1909년 7월)에 『북관대첩비 사건의 소감』이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조선의 국권이 일본에 넘어간 상황이라 누구도 어떠한 조치도 못하였고 그 사실조차 망각되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35년 해방 이후 30년간 잊혀져 있다가 동경 한국연구원장 최서면 선생이 조소앙 선생의 글을 우연히 보고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여 북관대첩비의 실물을 보게 되어 1978년에 국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 비석은 처음에 야스쿠니 신사 한 구석 비둘기 집 아래 한 모퉁이에서 비둘기의 흰 똥으로 덮여 방치되어 누워있다가 한국인들이 이후 많이 방문하니까 과

거 누워 있던 곳으로부터 200m 가량 떨어진 야스쿠니 신사 본전 뒤로 비각을 세우고 철책으로 둘러싸서 보존하였으나 1톤이 넘는 무게의 머릿돌을 얹어 놓아 일본측이 조선의 민족정기를 짓누르기 위해 모셨다는 의심을 충분히 하게 하였다.

이후 정문부 장군과 그의 의병들의 후손 및 우리나라 정부, 조선 황실의 후손, 양국의 불교계등이 합심하여 꾸준히 반환 운동을 벌였으나 일본측은 이 비석이 본래 북한측에 있었던 것이라 우리에게 반환할 수 없다. 북한측과 합의하면 돌려 주겠다는 등 시간을 끌다가 2005년 3月에 한일 불교 복지협회와 북한의 조선불교도 연맹이 북경에서 만나 합의하고 최종적으로 북관대첩비를 북한으로 반환하기로 하였다.

2005년 6月에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 10月에 일본으로부터 반환 받았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북관대첩비를 반환 받기 위한 공사를 할 때 북관대첩비가 견뎌야 했던 기나긴 세월 비석을 누르고 있던 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1905년에 일본으로 침탈된 후 꼭 100년만인 2005년에 한국으로 반환되어 한국에서 보존절차를 거쳐  핍박의 역사인 1톤 가량의 머릿돌을 벗어 던지고 유사한 시기 조성된 해남의 명량대첩비 등의 머릿돌을 참고하여 복원하였다.

2006년 3月1일 개성에서 인도되어 3月23日 최종적으로 북한의 원래 있던 자리에 세워지게 되고 북한측은 2만m2의 보호구역을 조성하고 받침돌은 건립당시의 받침돌을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북관대첩비는 현재 북한의 국보문화 유물로 지정되어있다.

남북의 공동노력으로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온 역사적인 사건으로 민족문화유산의 남북한 공동보전을 위한 큰 초석이 된 업적이다.

조소앙선생의 한도 조금이나마 풀렸기를 기대해본다.

북관대첩비의 반환과정이 일본으로 수탈 강점된 우리 문화재를 되돌려 받기 위한 하나의 시금석이 된 사례라고 생각된다.

현재는 가비가 국립박물관,독립기념관, 의정부 정문부장군묘소 ,진주 충의사 등에 세워져 있다.

(사)전국퇴직금융인협회 초대회장
(사)전국퇴직금융인협회 초대회장

(글쓴이 = (사)전국퇴직금융인협회 초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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