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가을에서 맞이하는 봄
生의 가을에서 맞이하는 봄
  • 전병호 기자
  • 승인 2021.05.0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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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사진) = 나병문. 경영학 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서울=파이낸셜리더스) 전병호 기자 = 

다시 찾아온 봄

영영 떠나버린 줄만 알았던 봄이 소리 없이 찾아왔다. 반갑고 놀랍다.  

작년 초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전염병이 1년 넘게 창궐 중이다. 코로나19라는 역대급 재앙을 맞아 너 나 할 것 없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움츠러들었다. 겨우 숨만 쉬고 있는 형국(形局)이다. 분명 따뜻한 햇살이 어깨 위로 내려앉고 있음에도 봄을 실감하지 못한다. 놀란 가슴을 아직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음이다. 하기야, 그토록 믿었던 안전 시스템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목도(目睹) 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인간들은 그동안 지구의 주인인 양 행세했다. 하지만 이번에 하찮은 바이러스가 나서서 그 같은 오만함에 대하여 확실한 경고를 날린 셈이다. 이에 놀란 인간들이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지금의 상황이 언제 끝날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이것이 21세기에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재주 좋은 어느 작가가 현란하게 빚어낸 허구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매서운 칼바람을 야멸차게 휘두르던 겨울도 언제까지나 봄의 앞길을 막아설 수 없는 것처럼, 제 세상을 만난 듯 기승을 부리는 전염병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세상 이치다. 그러니 봄이 돌아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찾아온 봄은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고 반갑다.  

봄은 위대하다. 생명을 창조하는 계절이다. 겉보기에 부드러워 보이지만 새싹을 움트게 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런 봄이 거짓말처럼 내 곁에 와 있다. 모처럼 가슴을 활짝 펴고 상서로운  봄기운을 흠뻑 들이킨다.   

生의 가을에서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필부(匹夫)는 눈을 감고 지나간 봄을 생각한다. 그 시절의 추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과 눈부신 꽃잎들의 재롱잔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윽한 향기가 콧속을 간질이는 느낌까지 든다. 그 당시엔 몰랐다. 좋은 날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 와서 자책하자는 게 아니다. 본디 인간은 그만큼 현명하진 못하다. 그런 이치를 이제야 어렴풋이 깨달아가고 있다.    

문득, 동네 입구에 묵묵히 서 있는 고목에 눈이 간다. 저 나무도 지난날을 그리워할까? 필부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본다. 한참 동안 머뭇거리던 나무가 어렵사리 입을 뗀다. 

젊은 시절에야 힘들이지 않고도 꽃을 피워냈다. 세상을 온통 환하게 밝히는 꽃잎으로 온몸을 뒤덮었다. 지금도 마음은 그때와 다를 바 없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새싹을 틔우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젊은 시절의 자신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웠는지를 깨닫는다. 예전보다 훨씬 힘들게 드문드문 피워낸 꽃잎에 더없이 애착이 간다.  

요즘 들어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세상 밖으로 나와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던 시절엔 모는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이 놀라웠고, 때마다 찾아오는 벌과 나비들이 반가웠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주위를 감싸고돌았다.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 날들이 영원할 줄 알았다. 다 지나간 이야기다. ​

따사로운 봄볕 아래서, 나이 든 필부와 오랜 풍상에 지친 고목이 하나가 되어 흐르는 시간을 말없이 지켜본다.  

메멘토 모리 

살면서 감추고 싶은 것들이 있다. 드러내지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있고, 누군가를 속이려는 검은 속셈도 있다. 그런 것 말고도, 지극히 개인적인 비밀 같은 것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전혀 비밀스럽지도 않은 일인데 드러내기를 꺼리는 하나가 있다. 바로 ‘죽음’에 관해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에 대한 애착의 다른 이름이다. 

이제는 담담하게 죽음을 응시해도 될 것 같다. 당장 죽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삶과 죽음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삶 가운데에 죽음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물론 대놓고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분명한 사실을 언제까지나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즐거움이 있다. 필요 이상 먹지 않음으로써 몸이 가벼워지고, 쓸데없는 욕심을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이 편해진다. 삶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남은 생은 한결 우아해질 것이다. 
 
버려야 할 것들  

나이 들면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욕심과 고집이다. 오랜 경험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현명함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갈수록 깊어지는 노욕(老慾)도 있다. 자신이 이 땅을 떠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분명 모르진 않을 텐데, 마치 수백 년을 더 살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라. 오늘도 욕심을 앞세운 채 무섭게 질주하는 그들의 행렬로 온통 북새통을 이룬다. 

욕심 못지않게 갑갑한 것이 고집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상당수는 모든 걸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며, 자신과 다른 견해를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그 완고함이 너무 깊어서 때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말만 한 강아지가 강아지만 한 말보다 크다’라고 우긴다.  ‘옹고집’ 그 자체가 된다. 연민(憐憫)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경향이 있다. 자신만의 사고체계를 금방 뒤집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다. 막무가내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완고하게 구는 사람을 좋아할 이는 아무도 없다.  

가을이 봄에게 말하다  

흔히 인생은 짧다고도 하고 길다고도 말한다. 그것은 관점에 따라 다를지언정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출발선에서 바라볼 때 아득히 멀게만 보였던 세월도 지나고 나면 한순간이다. 인간의 한평생은 억겁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지만, 하루살이의 눈에는 한없이 기나긴 여정일 것이다. 이렇듯 상대적이다. 어디 세월뿐이랴. 삼라만상이 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고 믿고 싶지만, 기실(其實) 사람 수만큼 많은 세상이 존재한다. 아니, 한 사람 안에도 세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변하고, 처한 사정에 따라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기도 한다. 이렇듯 세상은 변덕스럽고 예측하기 힘들다.   

생의 봄을 구가하는 젊은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봄은 짧고 여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가을은 덧없으며 겨울은 황량(荒凉) 하다. 이러한 사실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우쳤으면 좋겠다. 늘 그것을 가슴에 새기고 정진하라. 시간을 소중히 여겨라(一寸光陰 不可經). 이렇게 말하다 보니, 제대로 꼰대가 된 내 모습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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