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자본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 전병호 기자
  • 승인 2020.03.19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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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생 단국대 교수
허구생 단국대 교수

(서울=파이낸셜리더스) 전병호 기자 =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이는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적이 잘 먹고 잘 입고 남보다 호화스럽게 사는 데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형편에 따라 ‘개같이’ 벌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정승처럼’ 살고 싶은 것이 오랫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경제행위를 영위하게 하는 지배적 동기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16세기 유럽 사람들 중에는 전혀 다른 동기를 가지고 경제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돈을 벌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근검절약하며 모은 돈을 재투자하여 더 큰 이득을 얻으려 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 새로운 현상에서 무제한적인 이윤의 추구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의 출현을 보았다.

막스 베버는 이러한 새로운 현상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의 일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칼뱅주의 신앙이었다. 그의 명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20)은 예정론적 구원론과 소명이라는 칼뱅주의적 교리가 그의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선행과 기도를 통해 자기 구원에 스스로 기여할 수 있다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보편론적 구원론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에 모든 것의 운명을 이미 결정했으며 이 운명은 사람의 그 어떠한 행위로도 바꿀 수 없다는 가르침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 충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근면과 성실로써 큰 재산을 모은다면 이것이 바로 자신이 신에 의해 구원 받기로 예정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는 자기 확신이었다.

그러나 유물론적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유럽의 16세기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는 베버의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자본주의를 출현시킨 계기가 된 것은 종교가 아니라 가격혁명(price revolution)이라는 경제적 사건이었다. 가격 혁명은 16세기 초반에서 17세기 초반에 걸친 약 백 년 동안 유럽의 물가가 4~6배 가까이 오른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기껏해야 2 퍼센트에도 못 미치니, 1970년대 내내 매년 두 자릿수의 물가 인상이 이어졌던 것을 기억하는 한국 사람들은 그 정도 가지고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가당하기나 한 것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20세기 이전에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은 거의 없었다. 13세기에도 물가가 오른 적이 있고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1760~1815년)에도 물가가 오르기는 했으나 16세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그러므로 미증유의 경제현상을 목격한 동시대인들의 당혹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학자들이 16세기 가격 혁명의 원인을 보는 시각은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메리카에서 유입된 금과 은, 또는 귀금속의 함량을 낮춘 불량화폐발행(debasement) 때문이라고 보는 총통화 이론이다. 어빙 피셔의 교환방정식(MV=PT)을 준용해 화폐의 유통속도(V)와 재화의 거래량(T)이 일정하다면 결국은 통화량(M)이 가격 수준(P)을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스페인이 멕시코, 페루, 볼리비아 등에서 본격적으로 귀금속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초였다. 특히 볼리비아의 포토시 은광 개발 이후 스페인의 세비야에 입항하는 은의 규모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1560년대 후반 이미 83t에 달했던 연간 은 수입량은 1590년대 전반기에는 무려 274t에 이르렀다. 총통화론의 가장 큰 약점은 아메리카 은의 유입이 본격화하기 훨씬 전인 1520년대부터 물가가 오르기 시작한 사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해석은 인구론적 설명이다. 16세기 유럽의 인구는 2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한 데서 가격 혁명이 일어났다는 생각이다. 재화에는 그 특성상 공급이 수요에 비탄력적인 것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식량이다. 늘어난 수요를 맞추려면 경작지를 늘리거나 생산성을 개선해야 하는데 그것이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론적 해석은 16세기 식량 가격이 산업재에 비해 최소한 2배 이상 많이 올랐다는 사실에서 단단한 입지를 가진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비약적인 농업 생산성 향상으로 물가에 대한 인구 압력이 많이 해소되었음에도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었다는 반론에 대해 취약한 면이 있다. 우리는 결국 이 두 가지 해석을 모두 수용해야 가격혁명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16세기의 인플레이션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실 인플레이션 그 자체보다 그것이 가져온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결과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식량 가격을 중심으로 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은 기존의 경제 질서를 흔들어놓았다. 특히 오랫동안 토지를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수입을 거두어 오던 지주계급에게 이것은 위기인 동시에 둘도 없는 기회였다. 지주들의 전통적인 수입 기반은 소작인들(copyholders)로부터 받는 지대(rent)였다. 그런데 지대는 관습법에 의해 묶여 있어서 아무리 인플레이션의 시대라 할지라도 지주들 마음대로 자유롭게 올릴 수 없었다. 소작의 계약기간이 수십 년에 이르고 심지어는 소작권이 권리로 자식들에게 세습되는 경우도 많아서 소작인을 마음대로 내쫓을 수도 없었다. 이러니 인플레이션은 전통적 지주들에게 밀어닥친 커다란 경제적 위기였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소작을 주지 않고 농업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직접 농사를 경영하고, 생산성을 강화하여 소출을 늘리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들의 실질적 수입은 배가될 것이다. 이러한 행운을 차지한 일단의 지주들이 있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그 결과 영국 전체 경작 가능한 토지의 30 퍼센트가 넘던 수도원 등 교회 소유의 광대한 토지가 국왕의 소유로 넘어갔고, 이는 다시 매각을 통해 젠트리 등 지주계급의 차지가 되었다. 이 토지들은 비교적 전통적 계약관계로부터 자유로웠다.

이 토지의 소유자들을 중심으로 자본집약적이고 상업지향적인 농업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규모 토지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이를 여러 구역으로 분리, 각기 목축지와 경작지로 사용하다가 몇 년 후에는 서로 용도를 바꾸어 사용하는 이른바 전환농법(convertible husbandry)을 시작했다. 일부 지주들은 강물을 목초지까지 끌어오는 대규모 관개농업도 병행했다. 공기 중의 질소를 토양에 흡수시키는 콩과식물을 주로 재배한 목축지에는 수년 간 가축의 배설물까지 스며들면서 경작지로 전환될 무렵에는 토양의 비옥도가 획기적으로 좋아질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농업생산성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이들이 바로 20세기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R. H. 토니의 저작 《젠트리의 흥기, 1558~1640》(1941)의 주인공들이었다.

반면에,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영세농의 자식들은 상당수가 농토 부족으로 인해 임금노동자가 됐다. 거기에다 인클로저와 전환농법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집약적인 농업경영이 시작되면서 적지 않은 소작인들이 퇴출됐다. 특히 흉작이 연속되면서 대지주와 영세농의 희비곡선이 엇갈렸다. 전 산업화 경제에 있어서 곡물의 수확량과 가격의 상호관계에 대한 계량적 연구에 따르면, 수확량이 평작의 10퍼센트를 밑돌면, 30퍼센트의 가격 인상요인이 발생하고, 20퍼센트를 밑돌면 가격은 80퍼센트가 올랐다. 30퍼센트가 감소하면 가격은 2.6배가 되고, 작황이 평균치의 절반으로 떨어지면 가격은 5.5배로 치솟았다. 흉작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내다팔 잉여작물이 있는 대지주들은 큰돈을 벌었고, 잉여작물은커녕, 식량, 가축용 사료, 내년 농사를 대비한 종자 등이 부족해진 영세농들은 영농자금을 고리로 빌렸다가 땅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렇게 해서,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새로운 지주집단이 형성돼 과감한 자본 투자와 합리적 경영으로 자본력을 키워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노동자가 양산돼 값싼 노동력이 시장에 공급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바야흐로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적 세계가 열리게 된 것이다.

(글쓴이 = 허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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