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수명을 늘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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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서영 기자
  • 승인 2019.11.13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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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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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셜리더스) 주서영 기자 = 장수시대에는 삶의 구조를 잘 짜야 한다. 전투하기 전에 진지를 구축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수명증가라는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건강·근로·돈 세 가지 수명을 늘려야 한다.

잔 칼망 할머니의 현명한 선택

잔 루이즈 칼망(Jeanne Louise Calment, 1875년 2월 21일 ~ 1997년 8월 4일)은 공식 기록으로 122년 164일(총 44,724일)을 산 최장수 인물이다(이 기록은 1999년판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남편은 잔 칼망이 67세 되던 해에 74세로 사망했으니 배우자와 사별한 뒤 55년을 혼자 산 셈이다. 건강 상태가 매우 좋아서 85세부터 펜싱을 시작했고 110세까지 자전거를 탔다. 114세에 영화 `Vincent and Me`에 출연해 사상 최연장자 여배우로도 기록되었다.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는 고흐를 직접 본 인물이며 고흐에게 색연필을 판매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궁금증이 있다. 대체 누가 돈을 대 주어서 이렇게 오랫동안 노후의 삶을 누릴 수 있었을까?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유산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 중 하나의 답은 잔 칼망이 동네의 변호사와 주고받은 계약에 있다.

90세가 넘은 잔 칼망은 유일한 자식이었던 딸이 마흔도 안 된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고 손자도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상속을 해줄 사람이 없자, 같은 동네의 47세 변호사(Andre Raffray)에게 아파트를 매매하기로 계약했다. 동네 변호사에게 살던 아파트를 팔기로 하면서 그 당시에는 생소한 특이한 구조를 짰다. 잔 칼망이 살아 있는 동안 변호사가 매달 2,500프랑을 지불하고 그녀가 죽으면 소유권을 넘겨받기로 했다. 혹시라도 변호사가 먼저 죽으면 그의 가족이 돈을 할머니에게 지급하는 장치까지 해 놓았다.

당시 잔 칼망의 나이는 90세였고 변호사는 47세에 불과했다. 잔 칼망은 죽을 때까지 매월 일정한 현금을 받을 수 있어 좋고 변호사는 크게 목돈 들이지 않고 싼 값에 집주인이 될 수 있는 윈윈(win-win) 전략이었다. 다만 잔 칼망이 너무 오래 산다면 변호사는 손해를 보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변호사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변호사는 77세로 사망했지만 잔 칼망은 12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변호사가 30년 동안 매달 2,500프랑을 지불한 금액은 이미 집값의 두 배가 넘었다고 한다. 그뿐 아니다. 변호사가 죽은 다음에는 가족들이 계약을 물려 받았다. 어찌됐든 그들은 주택 소유권을 넘겨 받으려면 잔 칼망이 사망할 때까지 매달 약속한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잔 칼망은 변호사가 사망하고 나서 2년을 더 살다 122세로 사망했다. 잔 칼망은 젊은 변호사와 집을 매개로 체결한 계약 하나로 노후를 잘 살았다. 잔 칼망이 빨리 죽었으면 손해가 아니었냐고? 우연히 수명이 유례없이 긴 사람의 사례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런 관점은 노후 자산관리 목적을 자신의 수명과 관계없이 수익만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수익만 극대화하는 전략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절름발이 전략이다.

노후 자산관리의 목적은 자신이 살아 있을 동안 지출을 가장 많이 하게끔 해야 한다. 이를 전문적으로는 생애 효용극대화라고 한다. 효용은 지출의 크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잔 칼망은, 설령 일찍 죽더라도, 그냥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집에서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사망하는 것에 비해 집을 매개로 매월 2,500프랑을 받았기 때문에 지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잔 칼망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좋은 구조를 짠 것이다. 생전에 ‘신이 나를 잊은 모양이다’란 유머를 했지만, 변호사에게 미안했는지 이런 말도 했다. ‘우리 모두 인생에서 잘 못된 계약을 할 때도 있다’.

재테크 보다 좋은 구조를 짜야

이것이 구조의 힘이다. 잔 칼망은 수명이 길어지는 데 대응할 구조를 잘 짜 놓은 것이다. 재테크보다 노후 구조가 우선이다. 노후에 삶의 구조가 뼈대라면 재테크는 살이다. 좋은 구조의 힘은 사회의 성공적인 기관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성공한 나라나 사회, 조직은 모두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도 수명이 길어지는 데 대응해 좋은 구조를 짜 놓아야 한다. 우리 수명은 길어질 뿐 아니라 얼마나 길어질 지 불확실하다. 수명이 갑자기 20~30년 점프하듯이 길어질 수 있다.

사람이 너무 빨리 달려서 모자만 공중에 남아 있고 몸만 저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와 모자를 가지고 달려 가는 만화 장면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해 부작용들이 생기는 수가 많다. 우리나라 평균수명도 40년 동안 2년마다 1년씩 길어졌으니 엄청난 속도이다. 그러다 보니 길어진 수명에 적응하지 못해 갭(gap)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명은 길어졌는데 건강수명은 길어지지 않다 보니 아픈 기간이 많아 삶의 질이 떨어진다.

이 외에도 근로수명과 돈의 수명이 수명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앞으로 갭이 더 확대된다. 이 갭을 메우는 게 우선해야 할 구조 만들기이다.

‘건강·근로·돈’ 세 가지 수명을 늘리자

첫째, 건강수명을 늘려서 평균수명과의 갭을 줄여야 한다. 건강수명이란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활동이 불편한 기간을 뺀 수명을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2015년 건강수명이 73.2세로 평균수명 82.3세와는 약 9세 차이가 있다. 15년 전과 별 달라진 게 없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3년 정도 더 아프니 유념해야 할 일이다. 유럽 등은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가 7세 정도이다.

건강수명이 길다는 것은 100세 이전에 특별한 병을 앓지 않고 100세를 넘기면서도 건강하게 살다가 병이 들면 오랫동안 앓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앓는 기간을 줄이는 ‘병의 압축’이 필요하다. 병을 압축하는 방법은 평범한 데 있다. 옛말에 ‘골골 80년’이라고 했지만, 평소 자주 앓는 사람은 그리 오래 못 산다. 평소에 건강해야 한다. 좋은 생활습성을 가지고 병원에 자주 가야 한다. 좋은 생활습성은 적게 먹고, 골고루 먹고, 많이 움직이고, 적정한 체중을 유지하는 데 있다.

둘째, 근로수명을 늘려야 한다. 은퇴자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어냐고 물어보면 연금, 건강, 돈, 관계 등을 답한다. 하지만 정작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자산은 깜빡 잊고 있다. 무엇일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라는 인적 자산은 돈을 벌기도 하고 반대로 아프면 돈을 많이 쓰기도 한다. 노후에 나를 잘 활용해서 소득을 창출하고, 건강해져서 비용을 줄인다면 이보다 좋은 은퇴설계는 없을 것이다.

어떤 분이 몇 년 전에 사업을 정리하고 6억원을 예금에 두었더니 월 100만원 정도가 나오던데 어디 가서 한 번 강의를 했더니 100만원을 주더라는 했다. 일을 해서 월 100만원 버는 사람은 예금 6억원을 가진 사람과 같은 셈이다. 그 분은 일의 가치가 이렇게 높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은퇴자들에게 가장 경쟁률이 높은 직종이 아파트 경비원이라고 한다. 노후에 일을 하면 비경제적인 효과도 같이 따라 온다. 건강이 좋아지고 관계망이 넓어진다. 그냥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는 것은 생뚱 맞지만, 일을 매개로 해서 만나는 건 자연스럽다. 관계망이 탄탄하면 노후 우울증도 줄어든다. 노후에 일을 선택할 때는, 젊을 때와 달리 돈을 얼마 버는 일인가 하는 것보다 비경제적인 가치를 많이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을 하는 ‘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나에게 ‘투자’해야 한다. 젊을 때 학교에 다니면서 나를 교육시킨 것처럼 노후에도 배우러 다녀야 한다. 나이가 많다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 수명이 길기 때문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빠른 때이다. 독일에서는 많은 시니어들이 대학 청강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후에도 배운다. 학사부터 시작해서 박사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노후 대비 저축도 좋지만 돈의 일부는 나에게 투자하자.

예금에서 연금·투자로 변화시켜야

셋째, 돈의 수명을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은 금융자산의 85%를 예적금과 같은 단기자산으로 갖고 있다. 고령자들뿐 아니라 젊은 세대의 퇴직연금 구성도 단기성자산이 75%를 넘는다. 퇴직연금은 50년 이상을 운용해야 하는 초장기성 자산임을 감안하면 추운 겨울에 짧은 팔을 입고 있는 셈이다.

돈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은 연금과 장기투자이다. 연금은 종신토록 받는 것이기에 아주 수명이 긴 자산이다. 다만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자산이므로 수익성보다는 리스크를 피한다는 관점에서 보유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금을 투자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5년 연기해서 받으면, 몇 살까지 살아야 유리할까를 따지는 사람도 많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가지고 있던 돈이 갑자기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후기 노령기에 일을 해서 돈을 벌기도 어렵다. 이런 때를 대비하는 게 연금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활비 정도는 연금으로 해 두는 게 좋다.

장기투자는 무작정 자산을 오래 가지고 있자는 뜻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을 선택하자는 의미다. 1년의 시간으로 자산을 바라보면 예적금, ELS(주식연계증권), 단기채권 정도가 적합한 자산이 되나 5~10년의 시계로 보면 인프라펀드, 리츠(REITs), 사모투자펀드, 해외주식, 해외채권 등으로 대상이 확대된다. 수명이 길어지는 것과 함께 노후자산을 단기자산인 예금으로만 집중하지 말고 연금과 투자자산으로 분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운동회 할 때 두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두 다리를 묶어 달려가는 게임을 하곤 했다. 네 다리가 보조를 잘 맞추어야 이긴다. 장수운동회에서는 건강수명, 근로수명, 돈의 수명을 늘려 평균수명의 리듬을 따라야 한다. 네 가지 수명의 보조를 잘 맞추어야 노후가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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