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피는 꽃
중년에 피는 꽃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9.03.05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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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나병문 경영학 박사, 前 우리은행 지점장
사진=나병문

(서울=파이낸셜리더스) 한지혜 기자 = 옷 속으로 파고들던 날카로운 바람이 조금씩 무뎌지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봄이 오려나 보다. 계절의 변화를 수십 년도 더 지켜보았지만, 그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봄기운에 청춘들의 가슴은 마냥 설렌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아름답다. 언제 보아도 흐뭇하다. 문득, 이 땅에서 살아가는 중년들에게 생각이 미친다. 청춘이 지나가 버린 그들의 가슴도 여전히 뛰고 있을까?

주역에서 밀려난 중년 - 빼앗긴 청춘에게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번째 연이다. 1926년 《개벽》 6월 호에 발표된 이 시는 국토와 주권을 빼앗긴 식민지하의 민족 현실을 '빼앗긴 들'로 비유하고 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길 당시, 백성들에게 무슨 큰 잘못이 있었던가. 약소국가에서 태어난 것이 죄라면 죄일 것이다. 나약한 군주, 사욕을 앞세운 관료들이 만 백성을 일제의 노예가 되는 길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빼앗긴 주권을 되찾은 지 칠십 몇 년이 지났다. 비록 남북으로 나뉘어 있기는 하나 우리는 당당한 주권 국가에 살고 있다. 국력도 신장하여 세계 10위권에 근접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땅의 국민들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청춘을 빼앗긴? 중년들은 급격하게 위축된 삶을 살고 있다. 그 시절의 백성들이 그랬듯이, 산업 시대의 역군이었던 그들은 자신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100세 시대가 왔다고 한다. 신체적인 수명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힘이 팔팔하게 남아있는 중년들은 급격한 속도로 현역에서 밀려나고 있다. 익숙한 환경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후 맞닥뜨리는 것은 삭막하고 낯선 환경이다. 어리둥절하여 상황 파악을 하려 애쓰고 있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다. “밖에 나와 보면 알게 될 거야 얼마나 춥고 외로운지를. 안에 있을 때는 절대 알 수 없지”라고 말하던 선배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끝나자. 출생률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 시기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의 나이가 60세 전후에 몰려있다.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왔고, 은퇴 후에도 편하게 쉬지 못한다. 새로운 생존경쟁의 場으로 몰려가는 형국이다. 문제는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이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더 척박하고 암울하다는 데 있다. 그동안 든든하게 지켜주던 울타리는 날아가고 없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삭풍이 부는 허허벌판만 보일 뿐이다.

오늘날의 중년들은 젊은이들처럼 대놓고 불평도 하지 못한다. 그저 속으로만 끙끙 앓을 뿐이다. 하소연을 귀담아 들어줄 사람도 없다. 혼자 있을 때는 전전긍긍하면서도 겉으론 당당해 보이려고 애쓴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 바라보기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앞이 보이지 않던 그 시절에도, 시인은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애정 어린 친밀감을 표현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혼자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자고 외친다. 그의 제안에 선뜻 공감하기는 어려울지라도, 그 표현 속에 숨어있는 깊은 뜻을 헤아려보고 싶다.      

이 땅의 중년들이 처한 상황이 엄혹하다곤 하나, 그 시절에 비하면 엄살 부릴 정도는 아니다. 젊은 시절에 비해 주위의 관심이나 역할이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나의 존재감을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꾸어보자. 여전히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이 늘 있던 자리에 서 있다. 다만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세상도 한결 우호적인 태도로 다가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니 경이롭지 아니한가. 

스스로 한물간 세대라고 비하하지 말자. 변화하는 현실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말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가자. 지난날 산업시대를 이끌었던 엄청난 에너지가 아직도 내 안에 살아있음을 인식하자.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하는 자신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자.

其實, 우리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젊다. 현재의 60代는 한 세대 전의 50代보다도 한참 활기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올해 100歲가 되신 김형석 교수를 보면 답이 나온다. 어떤 사람이 그분에게 인생에서 전성기가 언제였느냐고 묻자, 60세에서 75세 사이였다고 답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송해 씨나 김동길 교수는 또 어떤가. 그분들이 보는 60代는 과연 어떨지 생각해 보았는가. 이제 막 철이 들어가는 젊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다시 꽃피우자, 중년이여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한동안 위축됐던 자신을 흔들어 일깨우자. 땀 흘려 일할 거리를 찾아 나서자. 목표를 세우고 계획표도 그려보자. 가슴 설레며 일상을 기록하는 기쁨도 다시 느껴보자. 그러려면 발상의 전환(Paradigm shift)이 필요하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중년들은 많은 능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이든 주어지면 해낼 수 있다. 언제라도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땀 흘릴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떤 일에 집중할 때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상이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지위에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린아이처럼 설렘과 호기심에 가득차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자. 그리고 시작하자.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중년들, 그들은 비록 완벽한 존재는 아니었으나 어려운 시절을 잘 헤쳐내고 살아왔다.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길 바란다. 자신을 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말한다. 행복하려면 스스로를 존중하자. 어떤 경우라도 자책하지 말자.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자.

홍조를 머금은 아기 진달래의 고운 자태는 저만치에서도 곱디곱다. 아지랑이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개나리의 미소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나비의 날갯짓이 아련하게 흔들린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가 온 사방에서 감지된다. 어느덧 봄의 축제가 시작되고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중년의 가슴에서 꿈이 사라졌다고 누가 말했는가. 아무도 그들의 봄꽃이 다시 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이 땅의 중년들이여,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열정의 불꽃을 다시 들어 올리자. 제2의 청춘은 이전의 그것보다 더 뜨겁고 밝게 빛나리. 두 팔을 한껏 벌려 다가오는 봄 햇살을 맞으러 달려가자.

그리하여 한 떨기 아름다운 꽃으로 멋지게 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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