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패밀리오피스
셀프 패밀리오피스
  • 전병호 기자
  • 승인 2020.03.31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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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steward)는 타인의 소중한 자산을 관리하고 보살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며,
유럽의 왕실에는 집사장 (lord high steward) 귀족사회에는 집사라는 이름으로...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 퓨처리스트,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엄길청 글로벌애널리스트, 퓨처리스트,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서울=파이낸셜리더스) 전병호 기자 = 청지기(steward)는 타인이 맡긴 소중한 자산(물질, 행복, 안전, 생명 등)을 내 것 이상으로 잘 관리하고 보살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성경은 하느님의 갖가지 은혜를 받은 직분을 가진 사람을 청지기란 말로 묘사하고 있다. 유럽의 왕실에는 집사장(lord high steward)이란 직책을 가진 고위관리가 왕가의 모든 것을 총괄하여 관리하였고, 귀족사회에는 집사라는 이름의 가사전문가들이 큰 집안의 자산은 물론 대소사를 맡아 관리했다. 오늘에 와서 다시 이 청지기가 등장하고 있다.

당초는 은행이나 보험회사들이 거액 자산가들의 개인자산관리를 맡아 주는 private banking업무에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점차 이전처럼 그 가문의 가업경영, 자산관리, 자녀교육, 승계관리, 사회적 책임, 행복한 일상 등을 총괄하는 일을 담당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근자에 한국 사회에서 불거지는 기업오너 일가의 이런저런 갑질 파문이 전통 있고 명예로운 성공한 가문을 지탱하고 유지시켜 준 가문 청지기들의 역할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있다. 자기 자손의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남다른 노력으로 큰 자산을 물려주는 가문들은 그 자산유지와 가문발전 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사회적 책무들이나 과업들을 전문가들이 맡아 보살펴주어야 한다. 패밀리오피(family office)라는 이름으로 지금 미국에는 6천개가 넘는 가문자산 관리사업체들이 있다. 보통 맡고 있는 자산이 1조원이 넘고, 이중에는 한 집안의 전속인 싱글패밀리오피스와 여러 집안을 동시에 돌보는 멀티플패밀리오피스가 있다.

미국의 록펠러집안이나 유럽의 로스차일드집안이 모두 패밀리오피스에 의해 긴 세월 후대에게 부와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그들의 주된 사명은 그 가문이 대를 이어가면서 모두의 우호적 평판(reputation)속에서 부가 유지되어야 하는 책무가 가장 크다. 복지국가인 스웨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표적인 기업가 가문인 발렌베리집안도 이제 6대로 가문이 넘어가지만 여러 전문가들이 후대들의 사회적 책임과 희생적인 헌신을 포함해 많은 의무와 역할을 관리하여 오늘까지 후대 가족들의 풍요로운 삶을 잘 유지발전 시켜오고 있다.

큰 부를 가진 후손들은 자신들이 평생 풍요로운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치러야할 책무가 막중하다. 국가에 대한 솔선하는 국민의 의무, 이웃에 대한 연민의 실천, 모두의 귀감이 되는 품격 있는 삶의 자세, 존경을 받을 만한 높은 도덕성 등이 그들이 원하는 풍요로운 가족의 소망을 가져다준다. 우리나라 대기업도 일부 집안은 이제 어느새 3-4대로 넘어가고 있다.

요즘 등장하는 몇몇 집안의 볼성 사나운 추문들은 이젠 이런 집안들이 전문적인 패밀리오피스의 손길이 필요한 때가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사실 오래전부터 대기업의 오너 일가 곁에는 비서실이나 기획조정실 같은 정책부서가 있어서 가족들의 경영권(governance)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오긴했지만, 주로 권리의 보호나 가족들의 재무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일을 했기 때문에 올바른 가정의자녀교육이나 사회적 책무를 돌보는 일까지 담당하진 않았다, 오늘날 목도하게 되는 삼성가의 문제나 한진가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필요성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이다.

세상에는 여러 직업들이 있지만 나의 지혜와 열정을 바쳐 남의 자산을 늘려주고 후대의 풍요를 지켜주는 직업인만큼 높은 윤리관과 지식을 요하는 직업이 없다, 평생 고객의 자산관리를 담당하는 일을 해오는 금융투자업계의 투자전문가들은 그런책임과 의무 속에서 일생을 보낸다. 어제 명동의 교회를 나서다가 과거 직장의 선배를 한분 만났다. 그저 가벼운 열정만 가득하던 나의 금융투자회사 영업추진부서장 시절에 일선지점장으로서 자산관리자의 진중하고 근면함을 몸소 보여주던 그 선배는 평생을 지점에서 고객자산을 맡아 운용해와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 왔는데,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건네는 명함을 보니 아직도 현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교보증권 명동지점 정맹교전무가 그분이다.

예수는 성경에서 청지기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충성됨과 정직함이 융합된 충직함이라고 했다. 나는 어제 밝게 인사를 건네는 그 선배의 여전히 겸손하고 바른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제 누구나 마음속으로 백세를 염두에 둔 삶을 생각해야 하는 분위기이다. 이제껏 열심히 살아온 결과로 어느 정도 재무적 여유가 생기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긴 세월을 생각하면 대대로 그 관리역량을 키우기 위해 여간 준비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평범한 가정이라 할지라도 큰 부자 가정이나 다를 바 없이 패밀리오피스 업무는 필요하다. 만일 스스로 한다면 셀프패밀리오피스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지혜로움,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는 관대함, 미래를 보는 통찰, 여유로움에 빠지지 않는 절제와 근면함은 그 어떤 자산보다 소중한 선대의 녹슬지 않는 유산이다.

(글쓴이 = 엄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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