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己亥年 아침에 친구에게 보내는 글
[칼럼] 己亥年 아침에 친구에게 보내는 글
  • 정리= 김정기 기자
  • 승인 2019.01.0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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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나병문 경영학 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사진] = 나병문 경영학 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친구여,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다지. 굳이 안부를 묻지 않아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언제나 내 맘속에 자리하고 있는 자네가 문득 생각나네. 

己亥年이 밝아오네. 작년 이맘때 戊戌年이 온다고 법석을 떨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나 보네. 환갑을 넘긴 사람에겐 한 해가 잠깐 왔다 가는 짧은 순간일까. 눈만 뜨면 마주치던 크고 작은 일들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날들이 지나갔네. 무사히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네. 거친 세파를 넘어서 한 살 더 먹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지. ‘황금돼지해’를 미처 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동기회 총무가 보낸 문자를 보았네. 새해맞이 행사를 준비한다는 공지를 자네도 읽었을 것이네. 초등학교 친구들이 모여서 1박 2일짜리 여행을 한다지. 어릴 적 운동회가 열릴 때마다 무리 지어 찾아갔던 이웃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고, 누군가 그 폐교를 개조해서 펜션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곳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양일세. 졸업한 지 오십 년이 되어 가는데 그런 행사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남녀 동기들 여럿이 참석한다니 대단하네그려.

동창회 같은 모임에 참석하기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 모임에 갈 생각은 없네만 친구들이 멋진 추억을 만들기를 응원하네. 자네가 대신 안부를 전하기 바라네. 분위기를 띄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를 이야깃거리로 삼아도 상관이 없네. 다만 옛 친구들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몇 가지 소망을 전하고 싶네. 지금부터 그걸 이야기하겠네.


꿈꾸는 삶

우리가 어릴 때 동네 어른의 환갑날에는 마을 잔치가 벌어졌었지. 오래 살았다고 축하하는 잔치였으니, 그분이 미래에 관해서 어떤 꿈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네. 노인들은 그저 추억만으로 사는 줄 알았지.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환갑을 넘긴 나는 아직도 소년과 다르지 않은 꿈을 안고 산다네. 여전히 호기심이 넘치고 철도 들지 않았지. 이제는 안다네. 꿈은 젊은이들만 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앙드레 말로가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라고 말했다지. 그 말에 동의하네. 어릴 때 장래의 꿈을 물어보시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친구들이 반에서 한두 명씩은 꼭 있었지. 대부분은 실현성 없는 꿈이었다는 것이 금방 드러났지만. 그런데 그중의 누군가가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세. 자네나 나는 멀리서 그 친구를 지켜보면서 부러워했을까 걱정을 더 많이 했을까. 요즘 우리가 보는 현실을 생각하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네. 

어린 시절의 내 꿈은 커서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거였네. 그러나 성장하여 다른 일을 하면서 오랜 세월을 흘려보냈지. 그러면서도 그 꿈이 아예 말라 버리지 않기를 바랐네. 비록 작가가 되지는 못했네만, 환갑이 넘어서 이렇게 몇 자씩 쓰기 시작한 것이 즐겁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네. 존경하는 琴兒 피천득 선생님은 생전에 소박하고 청아한 삶을 사셨지. 그분이 쓰신 주옥같은 수필들을 자주 읽으면서 조금씩 흉내라도 내고 싶은 꿈, 그 불씨를 이제라도 살려보고 싶다네. 앙드레 말로의 말을 믿고 싶은 거지.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번 모임에서 지난 이야기로만 밤을 지새우지 말고 앞으로의 꿈에 관해서도 몇 마디 나눈다면 좋지 않을까 싶네. 각자가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그 시절의 꿈을 꺼내서 새해부터라도 그것을 실현하려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그게 무엇이 되었든 말일세. 

꿈은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진통제와 같은 거지. 꿈이 있는 사람은 항상 설레고 호기심이 넘친다네. 꿈이 있어야 목표가 서고, 목표가 있어야 계획을 세우지 않겠나. 꿩을 그리려다 닭을 그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들 어떻겠나. 


몸과 마음의 건강

일흔 명 남짓한 동기 중에서 이미 고인이 된 친구가 열두 명이라고 들었네. 지금 같은 長壽 時代에 60년도 살지 못하고 가버린 친구들을 생각하면 허망하기 짝이 없네. 무엇이 그리 급해서 황망하게 가버렸을까? 새삼 건강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네. 다른 걸 다 갖추고도 건강을 잃으면 불행한 거 아니겠나. 쇼펜하우어도 “가장 어리석은 일은 이익을 얻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진 않은지, 일상생활 하는데 크게 불편한 점은 없는지 모르겠네. 다행스럽게도 나는 입원한 경험이 없을 만큼 크게 아파본 적은 없네. 소소한 감기에 걸리거나 어쩌다가 치과에 가는 정도지.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몸이 아프면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불편을 끼치니 아프지 말아야 하네.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지. 그렇다고 절대 무리하지는 말게. 오히려 역효과가 날 테니까. 허투루 듣지 말고 꼭 명심하게나.

그런데 몸의 건강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정신이나 마음의 건강 아니겠나. 몸은 멀쩡한데 정신이 잘못되면 정말 곤란하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신건강 문제로 고생한다고 들었네. 하기야 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기는 하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서 최소한의 품격과 자아를 유지하며 살아가세.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이니 우리라도 꿋꿋하게 버텨야지.


좋은 인연

멀리 가는 길이 외롭지 않으려면 좋은 인연이 있어야 할 거 같네. 누가 그러더라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의 삶을 결정한다고. 그렇다고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시끌벅적하게 어울리고 싶지는 않네. 그저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동반자와 마음이 통하는 친구 두어 명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네, 그 외에도 따뜻한 이웃으로 지내는 사람 몇이 더 있으면 좋겠지. 

좋은 인연을 원한다면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거 같네. 어떤 사람에게 소중한 인연이 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지. 그가 홀연히 내 곁을 떠나간다면, 온 세상이 무의미해질 만큼 깊이 있는 인연을 동경하며 살았네. 세월이 흐른 후에 우리가 ‘芝蘭之交’로 기억된다면 감사할 일이지. 


일하는 즐거움   

사람은 무언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거 같네. 그래서 일은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하는 모양이네. 오죽하면 데일 카네기 같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성공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하지 않았나.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지. 그러니 죽기 전까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이왕이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좋겠지.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있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소명의식을 잊지 않고 지켜가고 싶네.


감사와 봉사

요즘엔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성경 구절이 가슴에 와 닿더라고. 참으로 귀한 말씀이지. 어찌 보면 태어난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지.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말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옛날보다는 좋아지지 않았나. 자족하는 삶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네. 궁극적으로는 그 감사하는 마음을 봉사의 형태로 표현해야 할 것 같네. 지금껏 내가 받아온 것을 세상에 돌려드리는 과정이지. 재산이든 지식이든 다른 재능이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바쳐서 봉사하는 것.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네.   

친구여,
오랜만에 쓴 글이 설교처럼 되어버렸네. 其實 이 모든 게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네. 모자란 점이 많은 나에게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써본 거지. 자네는 벌써 알고 있었을 것이네. 그걸 모른다면 내 친구가 아니지, 안 그런가.

그건 그렇고 1년 후에 다가오는 2020년은 무슨 띠인가? 更子年에도 이런 잔소리를 나한테서 듣고 싶지는 않겠지? 자중하겠네.

잘 지내시게. 

글쓴이 = 나병문 경영학 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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