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은퇴 - 라팔모의 금융이야기 (1화)
황홀한 은퇴 - 라팔모의 금융이야기 (1화)
  • 전병호 기자
  • 승인 2020.06.12 1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쓴이 = 라팔모 前우리은행 런던지점장

 

라팔모前 우리은행 런던지점장
라팔모前 우리은행 런던지점장

(서울=파이낸셜리더스) 전병호 기자 = 홀연히 다가온 55세 은퇴.
아침이면 어김없이 6시 30분에 떠진 눈에 이제는 출근춘비가 필요 없어진 아침픙경은 참 낯설고 어색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출근하느라 부산 떨었던 아침인데 왜 이리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아내도 덩달아 잠자리에서 아직도 일어 나지 않고 있다. 문득 지난 30여 년간의 은행생활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실적 때문에 전전긍긍했던 때며 고객에게 이것 저것 부탁하며 자존심 상했던 것하며 못먹는 소주에 취해 괴로워했던 일하며 상사와의 갈등으로 힘들게 보냈던 시절들 등등. 30년 동안 결혼하여 애들 낳고 기뻐했던 때와 첫 장만한 내 25평 아파트에 입주해서 “좋아했던 기억들, 그리고 병아리 같던 아이들 뒷바라지에 울고 웃던 지난 시절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스쳐 지나 간다.

은행에 갓 입행 했을 때 딱 3년만 다니고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은 흐지부지되고 평생을 은행과 집을 오가며 살았던 것 같다. 젊은 시절엔 의협심도 강했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었는데 어느덧 나도 60 가까워져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안보게 되었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으려고 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직장에 얽매이다 보니 좋아했던 취미생활도 제대로 못했고 건조한 나만 남은 것 같아 좀 슬프기도 하다. 왜 그리도 바빴던지 야근을 밥먹듯 했고 주말이면 왼종일 퍼져 자다가 마누라와 싸운 기억도 새롭다. 하루 이틀 이런 무중력 상태 같은 날이 지속될수록 내 몸도 전투형 모드에서 어느덧 게으름 모드로 변해가고 있었다. 주변일도 웬지 심드렁해 지고 흥미도 당기지 않았다. 그러기를 1년여 재취업을 위해 이곳 저곳 기웃거려 봤으나 갈만 한 곳은 거의 없었고 거의 알바 수준의 일자리들이었을 뿐 정착할 곳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평생 30년을 일해 왔는데 왜 이리도 일자리를 알아보고 다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좀 쉴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세월 동안 나보다는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나를 뒤돌아 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제 당신에게 황홀한 노후를 보내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은행 친구들과의 만남도 이젠 좀 식상한 것 같고 거기서 나누는 대화도 누구가 어느 자리로 갔다는 얘기나 재테크를 잘해서 그친구가 부럽다는 등의 이야기 혹은 자식 농사를 잘지어 이른 바 사자 돌림의 직업을 갖고 있다는 등의 자랑섞인 이야기에도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무얼하면 마음이 기쁠까를 생각해 보았다. 좋아하는 고전음악을 본격적으로 들어볼까? 젊은 시절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한 번 읽어 보는 것은? 좀 비용이 들지만 우리 부부만의 해외여행을 1년에 두어 번은 어때?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았으니 이제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돌아 볼까? 내가 가진 금융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전수해 볼까?

이러 저러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대로 하나 둘씩 실천해 볼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보니 벌써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누라는 이 리스트를 보더니 푹 한 숨을 쉰다. 그럼 나는 뭐하냐고 채근하고. 그래서 가급적 같이 하자고 얘기해 버렸다. 그리고 자꾸 약해져 가는 기억력을 보완할 요량으로 글쓰기와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기도 했다. 몸이 아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술을 끊고 운동량을 늘리기도 했다. 요즈음은 중국어와 일본말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여행가서 써먹기 위해서다. 마음 속에 미움과 시기와 질투를 가급적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평생 돈을 만지며 살았던 관계로 부족했던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싶어서 관련서적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몸과 맘이 아름답게 늙어 가고 싶어서다. 나의 황홀한 노후를 방해하는 어떤 것도 거부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 부터는 나 자신보다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 보며 살고 싶다.

참 이상한 일이다. 멋진 노후를 생각하다 보니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평생 이재를 밝히면서 살았는데 이제 좀 건조해진 마음에 촉촉한 이슬비가 내리는 것 같다. 주변 친구들은 아직도 세간의 출세와 재물이 성공의 척도인 양 말하고 행동하는 편이다. 난 그것들이 진정 삶의 성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세상엔 세칭 출세와 재물보다 더 귀중한 것들이 있다. 바로 균형잡힌 인격과 인간에 대한 사랑과 진실과 그 진실을 지키려는 양심이다. 아쉽게도 은행원으로서 이런 귀중한 가치들을 놓치고 살아왔다. 세속적인 출세와 재물앞에 고개 숙이며 살아야만 했다. 이제는 내 내면에 그런 소중한 가치들을 회복시키고 나의 노후를 진정 멋지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황홀한 은퇴를 보장하는 길임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 191 (D.B.M빌딩) 601호
  • 대표전화 : 02-6925-0437~8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아영
  • 법인명 : 엠지엠그룹(주)
  • 제호 : 파이낸셜리더스(Financial Leaders)
  • 등록번호 : 서울 다 10890
  • 등록일 : 2014-08-28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겸 편집인 : 전병호
  • 파이낸셜리더스(Financial Leaders)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파이낸셜리더스(Financial Leader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bh8601@naver.com
ND소프트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